미완으로 표현해 낸 비통의 피에타
서경식 저자(1951-2023)가 2014년 이탈리아 여행 후 미술과 음악을 중심으로 쓴 에세이를 묶어 낸 책이다.
그는 미켈란젤로나 그 밖의 위대한 이탈리아 예술가들 앞에 겸허히 서서, 그들이 이루어낸 행위에서 느꼈던 놀라움과 동경의 마음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한다.
저자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 2세로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여러 어려움을 겪어내야만 했는데, 특히 그의 가족들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에서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이에 그의 시선은 자신처럼 디아스포라로서의 삶으로 고통과 전란을 겪는 온 세상의 사람들을 향해 있다.
이 책은 우리 시대가 처한 위기를 자각하고 뛰어넘고자 하는 그의 '인문학'적인 질문들을 담고 있다.
앞선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조차도 세상의 전란을 막기에는 무력하고 어리석었음을 보며, 저자는 질문한다.
"세상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예술에는 어떤 존재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에 저자는 바로 답하지 못한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만약, 예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인문 기행 속 만났던 여러 예술 작품 중, 저자의 마지막날 일정이었던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가 가장 마음을 울렸다.
대부분의 피에타가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지만, 이 조각상은 어머니가 뒤에서 아이를 감싸 안아 올리며 서 있다. 무덤으로부터 죽은 몸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다.
미켈란젤로가 89년 생애를 오로지 창조를 위해 고투한 끝에 미완성으로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비통 그 자체를 말하는 피에타이다.
미켈란젤로가 정을 한 자루 손에 쥐고 순백의 대리석 덩어리 속에 갇혀 있는 무언가를 깎아내어 바깥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도중에 그만두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500여 년 전 한 예술가가 미완으로 표현해 낸 이상스러운 비통함이.. 우리 시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터에 기념 조형물로 세워지기에 걸맞을 정도의 질량을 갖추고 있다고, 현대 예술보다 오히려 더 현대적인 표현이라 느껴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2002년에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에 대한 다큐멘터리, "아우슈비츠의 증언자는 왜 자살했는가?"를 촬영하며 방문했던 장소들을 다시 들르며, 또다시 우리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인류가 앞으로 인종, 민족, 종교 같은 장벽을 극복하고 평화롭게 공존해갈 수 있을까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피에타>, 1499년, 바티칸 산 피에트로 성당
<다비드>, 1504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론다니니의 피에타>, 1564년, 스포르체스코 성
책 속에서
- 천재 미켈란젤로는 20대에 완성이라는 영역에 도달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후에 타성에 빠진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형식'에 만족해 줄곧 그 안에 머물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 '완성'에서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힘겨운 싸움을 계속했고, 마지막으로 '미완성의 완성'을 남기고서 목숨이 다했던 것이다.
<론다니니의 피에타>, 미켈란젤로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완성'이 있을까.
서경식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