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인간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by Clare books

수전 손택(1933-2004)은 미국의 유명한 에세이 작가, 소설가이자 예술평론가이다. 그녀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불리며 2003년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했다.

2003년 쓰인 이 책에는 전쟁의 고통과 참상을 담은 수많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저자는 질문한다.

우리가 저 멀리 떨어진 분쟁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염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전쟁이 만들어내는 이런 끔찍한 장면들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며, 행동해야 하는가?


저자는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에 뉴욕타임스에 실린 '처형당하는 탈레반' 사진을 보여준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시 카불에서 사진작가 타일러 힉스가 찍은 사진이다.

부상당한 한 탈레반 병사가 미군 측 반탈레반 병사들에게 잡혀 피를 철철 흘리며 도살되는 장면을 찍은 일곱 장의 사진이다. 다행히 사진이 작아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데.. 설명만으로도 참으로 잔혹하다.


전쟁에 관련된 이러한 사진들은 처음에는 끔찍하여 눈을 돌리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에서처럼 계속 반복이 되면..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무감각해지게 된다. 그저 인간이 이렇게 서로에게 잔인한 존재라는 현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진에 대한 반응으로 평화를 부르짖는 이들이 있을 것인데, 이와는 반대로 더욱 잔인한 복수를 부르짖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라는 제목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고통'을 감각하는 주체는 '나' 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타인의 고통을 내 감각으로 결코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사진 속 타인의 참혹한 고통이 상상되어 괴롭고 끔찍하여 외면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의 전쟁이 속히 그치기를, 무고한 피흘림이 더 이상 없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민 이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음에, 이 전쟁이 그치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될 뿐임에.. 무력함에 빠질 뿐이다.


책이 나온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가자 팔레스타인, 이란 등 수많은 지역에서 전쟁과 폭격이 계속되고 있다. 그 고통과 참상에 내가 귀를 닫아버려 느끼지 못할 뿐이다.


저자는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

인간이 얼마나 섬뜩한 해꼬지를 타인에게 저지를 수 있는지.. 그것을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당황하기만 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보다는...


책의 부록에 '문학은 자유이다'는 제목으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 수상 연설문이 실려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문학과 작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이 세계에 눈길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어떤 사악함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이해하고 살펴보며 연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

그렇지만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냉소적이 되거나 천박해지거나 타락하지는 않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문학은 이 세계가 어떠한지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문학은 언어와 서사를 통해서 기준을 제시하고 깊은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문학은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발휘하도록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자신을 잊을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뭔가를 배울 능력이 없다면, 용서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타일러 힉스, <처형당하는 탈레반>, 카불, 2001.
에디 애덤스, <처형당하는 베트콩 포로>, 사이공, 1968.
제프 월, <죽은 군대는 말한다 (매복 뒤의 소련 정찰군 모습, 1986년 겨울, 아프가니스탄의 모르크 근처)>, 1992.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재원 옮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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