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케인 《비터스위트》

우리의 인생은 늘 달콤하면서 씁쓸하다.

by Clare books


우리의 인생은 늘 달콤하면서 씁쓸하다.


달콤함과 씁쓸함,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을 규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저자인 수전 케인은 말한다. 빛과 어둠, 태어남과 죽음, 만남과 이별이 항상 붙어 있는 것이다. ’비터스위트(Bittersweet)'는 ‘달콤씁쓸’한 삶을 통찰한다.


내가 아름답게 빠져드는 경험을 했던 음악들은 보통 단조 선율이었다. 궁금했었다. 슬프면서도 다시 솟아오르고, 먹먹해지다가 또다시 찬란하게 빛나는 그런 느낌은 도대체 무엇인지.

저자는 ‘달콤씁쓸한’ 단조의 음악이 이러한 슬픔을 이해하는 모든 영혼들과의 깊은 유대감을 주며, 초월감 즉 자신이 사라지고 모두에게 연결된 느낌을 가장 가깝게 체험하게 한다고 표현했다. 슬픔을 느끼는 중에 북받쳐 오르는 것은 사랑의 감정이며, 고통이 승화된 아름다움인 것이라고..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알바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다시 찾아 들으며, 이 음악이 내 안을 휘저어 고양시킴을 다시금 느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달콤씁쓸함이었다.


아름다움을 마주 대했을 때 울컥 눈물이 나는 것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헤매이는 인간의 처지에서 완벽함을 알고 이를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모든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열망이다. 무조건적이고 완벽한 사랑, 영원한 삶, 에덴 동산..

그 갈망을 놓지 못하는 인간임에 이에 닿지 못하는 슬픔을 피할 길이 없다.

예술과 문학으로 그 갈망을 해결하려 했더라도 사실 아름다움이 그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알려준다. 그것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이런 갈망을 ‘포토스’, 가질 수 없는 황홀한 어떤 것을 동경하는 열망이라고 정의했고, C.S. 루이스는 ‘젠주흐트’, 슬픔을 가눌 수 없는 열망이라고 일컬었다.

갈망 그리고 그로 인한 슬픔은 그것으로서 인간 존재인 것이다.


슬픔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강하다. 슬픔은 내가 생각해 왔던 부정적인 감정, 피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연민을 샘솟게 하는 원천으로 유대감과 사랑의 매개체였다.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이 이슬방울처럼 덧없음을 노래하는, 일본의 시인 ‘이사’가 200년 전에 지은 하이쿠이다. 그는 51세에 결혼하여 얻은 두 아들이 다 태어나 한 달 만에 죽었고, 그다음 태어난 딸도 천연두에 두 번째 생일을 맞기도 전에 죽었다고 한다. 그 딸에 대한 심정을 노래한 시라는 설명에..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그 슬픔과 비통함이 긴 시간을 넘어 나에게까지 전해져 온다.


영원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집착을 놓아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나는 딸을 영원히 그리워하리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하지만 그래도..’ 나는 딸이 다시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노래하였던 것이다.

이 시가 200년 전 이사와 나를, 그리고 죽어야 할 같은 운명의 슬픔으로 가고 오는 인간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삶의 덧없음과 고통을 사무치게 의식함이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다.


슬픔과 눈물은 인간이 가진 가장 강한 결속 매커니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슬픔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연민의 본능을 최대한 확장시키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다.


깊은 슬픔과 갈망은 죽음 즉 우리 존재의 비영속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지혜가 이 비영속성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온다고, 지혜의 열쇠가 바로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슬픔과 갈망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 또는 예술과 초월로 전환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마음에 깊이 남는다.


"비터스위트" 수전 케인 지음. 정미나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이전 19화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