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그 비밀한 순간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책을 읽는 사람에게 책들은 자신을 활짝 열어 온전히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읽는 것은 흘러가거나 소실되지 않고, 그의 곁에 남고 그의 일부가 되어, 깊은 우정만이 줄 수 있는 기쁨과 위로를 전해주리라.
헤르만 헤세의 책과 문학에 대한 짧은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헤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
그의 소설 '싯다르타'는 책 하나 권해달라는 친구에게 내가 가장 먼저 추천하는 책이다. 얇은데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깊게 읽힐 책이다.
두꺼워도 괜찮다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추천한다. 인생과 영성과 예술혼까지를 아름답게 펼쳐놓는 최고의 책이다.
이 에세이 중에 헤세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집필하는 과정의 고뇌를 기록한 부분이 있다. 문학이 예술로서 탄생하는 그 비밀한 순간을 엿본다.
"내가 썼던 산문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영혼의 전기들이다. 사건과 갈등, 스토리 중심이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독백으로, 이들 가공의 인물이 세상과 혹은 자아와 맺는 관계들에 주목한다..
어쨌거나 나는 다시금 잠깐의 아름답고 힘들고도 긴장되는 시간을 맞이한다. 이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할 고비이며, 가공의 인물과 관련된 모든 생각과 느낌들이 극도로 첨예하고 명료하고 급박하게 내 눈앞에 펼쳐지는 시간이다. 바로 이 시간에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막 생성 중인 작품을 일정 궤도에 올려줄 경험과 생각들이 총체적인 질료이자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어 액상 상태로, 즉 가용성의 상태로 존재하므로 이 질료를 바짝 붙들어 형태를 빚어내야지, 때를 놓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렇듯 저녁내 몰두했던 글쓰기가, 2년 전에 환상처럼 문득 나타난 한 인물상을 끈질기게 붙들어 형상화하는 것이,
이 필사적이며 도취적이며 소모적인 작업이 진정 의미 있고 불가결한 일이었을까.
카멘친트와 크눌프, 페라구트로 모자라 또 한명의 인물상, 또 하나의 화신을 만들어내는 일, 조금씩 달리 배합하고 조금 다르게 변형시켰을 뿐 결국 나 자신의 본질을 작품 속에서 또 다른 인물로 구현하는 작업이 과연 꼭 필요한 일이었을까?
나는 크눌프와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그리고 골드문트를 눈앞에 떠올리며, 그들의 아픔을 곱씹고 그 쓴잔을 다시금 맛보았다.
그들은 모두 형제요 동류이되 동어반복이 아니며,
다만 질문하고 고뇌하는 사람들이요,
삶이 내게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헤세는 계속하여 책의 마력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책에 홀린 사람이었고, 책의 넓은 세계가 얼마나 광활하고 다채로우며 즐거운지를 더욱 깨쳐 왔다고 말한다.
책읽기는 마법의 열쇠이며 강력한 보물이다. 그러나 그것을 진정으로 깨닫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진정한 독자들만이 책의 세계가 얼마나 광활하며 다채로우며 즐거운지를 깨쳐간다.
저자가 표현한 그 경이로움에 내 가슴이 함께 뛰며, 나도 이 세계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처음에는 이 책의 세계가 자그마한 금붕어 연못과 튤립 화단이 달린 아름답고 예쁜 유치원 뜰인 줄 알았는데, 뜰은 이내 공원이 되고 더 넓은 풍경이 되고 대륙이 되고 세계가 되고 낙원이 되고 코트디부아르 해안이 된다. 그리하여 늘 새로운 마법에 홀리고 늘 처음 보는 색색의 꽃이 만발한다.
또 어제까지는 정원이나 공원 혹은 울창한 숲으로 보였던 것이 오늘이나 내일쯤은 경건한 신전으로 다가온다.
수천의 홀과 뜰을 거느린 그 신전에는 모든 민족과 시대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서 끊임없이 새로이 일깨워지기를, 그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외적 형상들 속에 깃든 통일성을 발견해주기를 늘 고대하는 것이다.
이 무한한 책의 세계는 모든 진정한 독자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이며, 개개의 독자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추구하며 경험한다..
수천의 길이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수천의 목적지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그 어떤 목적지도 최종은 아니요, 그 너머마다 광활한 세계가 또 새롭게 펼쳐진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뜨인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