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호의에 대하여》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by Clare books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저자와 만나는 것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올해 4월로 38년 공직생활을 끝내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온 문형배 재판관님을 이 책으로 만났다.

저자가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목표했는지, 그의 오랜 시간이 이 책에 투명하고 소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책 제목의 '호의’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판사가 호의를 베푸는 역할은 아닐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평생의 꿈이었던 자신의 첫 책을 ‘호의’로 시작했다.

아마도 그는 어려운 형편의 자신에게 장학금을 주어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선을 베푼 김장하 선생님의 호의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 그것을 다시 갚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그는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를 계속해 왔다.

저자는 판사의 직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재판을 하고자 부단히 애쓰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편견과 독선에 빠지지 않고자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형사재판 중 한 번도 사형 선고를 하지 않았으며,
민사 재판에서는 원고와 피고 측이 각각 실리와 명분을 찾아 모두가 이길 수 있는 협상과 조정에 무게를 두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한때 이곳에 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삶이 행복해진다면 그것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이야기’ 블로그 활동을 20여 년간 해오고 있다.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그는 이런 경우에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었다고 말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인가?
그가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이, 착한 사람이 법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것이 2006년부터 저자가 블로그에 글을 써서 법률 지식을 공유하기 시작한 이유가 되었다.

저자는 글을 쓰는 또 하나의 이유를,
현재의 자신을 기록하여 나중에 돌아보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10년 지나서 내가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따져볼 때, 자신이 썼던 글로 잣대를 삼으려는 것이다.
블로그에는 그의 독서 기록 또한 방대한데, 이 책의 2부 ‘일독을 권한다’는 그중에서 저자가 특별히 추려낸 약 30편의 독서 일기이다. 저자의 글은 그의 삶처럼 담백하다.

저자는 자신이 책을 많이 읽게 된 이유를, 무지, 무경험,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대학에 들어와서 깨닫게 된 자신의 무지를 극복하고자 했고, 27세부터 판사직을 수행하면서 느끼게 된 경험의 부족을 극복하고자 했고, 결정의 어려움과 후회를 반복하지 않을 단단한 소신과 생각을 갖고자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책을 읽기를 권한다.
자신이 이렇게 생존함이 책을 읽기 때문이며, 무슨 책을 읽는지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고 다시금 강조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김장하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드립니다.”
“내가 아니었어도 자네는 오늘의 자네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자네를 도운 게 있다면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나는 사회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었을 뿐이니 자네는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

저도 선생님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갚을 것입니다. 이런 선순환이 쌓여 이 사회가 훨씬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지길 바랍니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 그 성취는 최대한 보장하되 기회를 제공한 공동체에 성취의 일부를 내놓음으로써, 그에게는 자부심을 선사하고, 이 사회에는 새로운 성취를 거둘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길 빕니다.
- 선순환의 공동체, 2008년 11월.


“호의에 대하여” 문형배 에세이. 김영사.

이전 27화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