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밖으로 나와서 정원 길을 올라요. 루리아나 루릴리.

by Clare books

이 소설은 20세기 초반 영국 모더니즘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며 그의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여진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이라, 책장을 넘겨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호흡에 익숙해지니, 자유롭게 흐르며 인물 내면의 작은 빛줄기 하나, 바람에 춤추는 나뭇가지 하나 놓치지 않는 그녀 특유의 문장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음미하며 여러 번 읽게 되면서 100년 전 영국의 인물들의 모습과 대화, 그 내면의 한계까지… 시처럼 그림처럼 아름답고 애틋하게 그려낸 이 소설에 깊이 매료되었다.


주인공인 램지 부인은 오십이 넘었고 여덟 아이의 어머니이지만 여전히 빛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상이며, 버지니아 울프가 열세 살 때 여읜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한다. 램지 부인은 철학자인 남편 램지 씨를 존경하고 자기를 다 소진해 버리기까지 깊이 사랑한다.


창 밖으로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등대와 푸른 바다가 펼쳐진 램지 가족의 집, 모든 손님을 초대한 저녁 정찬이 차려지고, 램지 부인이 준비한 프랑스식 스튜는 훌륭했다. 기쁨이 그들 가운데 감돌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램지 씨가 무언가를 되풀이하고 있었고, 그 리듬과 환희에 찬 울림과 우울한 목소리로 보아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정원 길을 올라요.
루리아나 루릴리.
월계화가 만발했고 노란 벌들이 윙윙거려요. 우리가 지금껏 지나온 모든 삶과 앞으로의 모든 삶은 나무들과 물들어가는 이파리로 가득할 거에요.


그 시어들은 그들 모두에게서 단절된 채 저 밖의 물 위에 떠다니는 꽃처럼, 아무도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았는데 저절로 생겨난 듯이 들렸다.

그녀 자신의 자아 바깥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그 단어들을 음악처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마침내 이것이 당연히 해야 하는 말이었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목소리인 듯이, 그들도 그녀와 똑같은 안도감과 기쁨을 느끼며 듣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오늘 밤으로 되돌아올 거라고 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이 달과 이 바람, 이 집으로, 그리고 또 그녀에게로 되돌아올 거라고. 그들이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에 자신이 감겨 엮여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은 모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들의 깊이 숨어 있는 내면의 심상들, 그리고 스쳐가는 찰나의 생각들을 버지니아 울프는 예민하게 끌어내어 우리에게 보여 준다.


램지 부인이 빅토리아 여성상이자 그녀의 어머니가 모델이라면, 릴리 브리스코 양은 새로운 시대의 여성상이자 그녀 자신을 표현한 인물이 된다. 램지 부인이 여자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독신은 안된다고 타일렀을 때, 릴리의 대답은 그녀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아버지와 집이 있어요. (감히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면, 그림도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저 자신이 좋아요. 저는 그런 일에 적합하지 않아요."


그리고 갑자기, 릴리는 램지 부인의 부재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온 세상이 단 한 사람의 부재로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폐하고 적막해졌다. 부인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따뜻하게 환하게 밝히는 태양이었던 것이다.. 이후의 세상은 램지 부인의 바램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릴리는 결혼과 사랑이 아닌, 그림을 좇았다. 성공작이 될지 아닐지 알 수 없는 남녀의 사랑은 그녀가 추구하는 바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한순간 덧없이 스러지는 생명, 삶의 엄중함 앞에 그녀는 캔버스 앞에서 부르짖는다. 삶이란 이렇게 짪은지, 인간이 영원에 닿을 방법은 없는 것인지를.. 그녀는 노시인 카마이클과 등대를 바라보며, 완성하지 못했던 그림을 다시 꺼내 그리며, 램지 부인을 가슴 깊이 그리워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난 후에야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그제야 누구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녀는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고, 홀로 있을 수 있었다. 이따금 필요하다고 느꼈던 건 바로 그것이었다. 생각에 잠기는 것, 글쎄, 생각에 잠기는 것도 아니었다. 말없이 있는 것, 홀로 있는 것. 모든 존재와 행위가 팽창하면서 반짝이고 시끌벅적하다가 흩어져 버린다. 그러면 사람은 엄숙함을 느끼며 오그라들어 본연의 자신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쐐기 모양의 어둠의 응어리가 된다..
밀착되어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간 자아는 더없이 자유롭게 기이한 모험을 떠날 수 있었다..
이 어둠의 응어리는 누구도 볼 수 없기에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의기양양해했다.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반갑게도, 모든 것을 다 그러모아 확고한 기반 위에서 쉴 수 있었다. 경험 영역에 한정된 자신이 아니라, 어둠의 쐐기로써 휴식을 얻었다. 사사로운 일신을 떨쳐 내자, 조바심과 초조함, 동요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이 평화, 이 평온함, 이 영원함 속에 모든 것이 모일 때, 그녀의 입술에는 늘 삶에 대한 승리의 탄성이 솟구쳤다. 그리고 멈추어서 그녀는 밖을 내다보고 등대의 빛줄기, 세 번 중 가장 길고 견고한 마지막 광선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녀의 광선이었다. 이 시각에 늘 이런 기분으로 그 빛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눈에 보이는 사물들 가운데 특히 한 가지에 밀착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길고 확고한 광선은 그녀의 광선이 되었다. 종종 그녀는 앉아서 일감을 들고 앉아서 바라보다가 마침내 자신이 바라보는 것(예컨대 그 빛)과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다시 카마이클 씨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칼날이 자를 수 있을까요? 주먹이 움켜쥘 수 있을까요? 안전함이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암기할 순 없을까요? 안내자도, 피난처도 없고, 그저 모든 일이 불가사의하고, 높은 뾰족탑에서 허공으로 뛰어드는 것에 불과할까요? 연로한 사람에게도 삶이란 이런 것일까요? 이토록 놀랍고, 예기치 않은, 미지의 것인가요? 잠시 그녀는 그들 두 사람이 지금 잔디밭에 서서 삶이 왜 그렇게 짧은지, 왜 그렇게도 불가해한 지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눈앞의 사물을 숨김없이 볼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춘 두 인간으로서 격렬하게 요구한다면, 그러면 아름다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그 공간이 채워질 것이며, 그 공허한 장식 무늬들이 형체를 만들어낼 거라고 느꼈다. 그들이 아주 큰 소리로 외친다면, 램지 부인이 돌아올 것이다. “램지 부인!”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램지 부인!” 눈물이 그녀의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이미애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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