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장편소설. 엄일녀 옮김. 문학동네.
“그러나 샘은 미처 사랑한다는 말을 못한 것이 애석하진 않았다. 세이디는 샘이 매직아이를 보지 못했음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며 눈발은 거의 그쳤고, 샘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따스함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샘은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세이디 그린이 그날 휴게오락실에 들어온 것에 감사했다. 우주는 샘의 느낌 상, 공정했다. 아니 공정까진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공평했다. 어머니를 앗아갔지만 대신 다른 누군가를 주기는 했다..
세상엔 오직 사랑뿐,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것뿐,
한데 그걸로 됐어. 화물열차의 무게는 레일이 골고루 나누어 져야지”
읽다보면 빠져들어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이다.
1990년대 보스턴, 하버드 수학과 학생 샘슨 매서가 MIT 컴퓨터학과 여학생 세이지 그린과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재회하는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들은 어릴 적 함께 게임을 했던 친구 사이이고..
다시 만난 그들은 함께 컴퓨터게임 ‘이치고’를 개발하고 회사를 창업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면서 뜻하지 않은 사고들을 함께 겪어 나간다.
컴퓨터게임은 단지 적과 싸워 이기며 레벨을 클리어하거나, 또는 많은 장애물을 헤치고 목표 지점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소설 속 세이지와 샘에게 있어 게임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샘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무언가, 잠시나마 자신의 문제를 잊은 채 플레이하고 싶어할 만한 것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소설을 넘겨가며 샘의 세상을 알아갈수록.. 어릴적 겪은 깊은 상실에 더하여 피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음에 마음이 무겁다. 어린 샘이 외할머니에게 “어떻게 극복했어요?”라고 묻는데, 외할머니는 “처음엔 힘들지. 그러나 날이 가고 해가 가면 점점 나아져.”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참 슬프다.
샘을 살게 한 것은 세이지와 함께 한 시간이었고, 세이지와 함께 한 게임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커서 세이지와 함께 게임을 만들며 하나의 세상을 창조해야 겠다는 꿈이 그를 살게 했다.
불편한 발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샘은 미래를 미리 걸어서 고통스러운 현재를 인내하는 법을 익혔다. 그는 자유로운 몸으로 모험을 찾아 떠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샘의 얼굴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고 동그랗고 환하다.
샘이 세이지와 이루어내는 친밀한 우정은 아름답다. 어쩌면 사랑보다도 더욱.
세이지는 호기심을 채우려 샘의 불운한 이야기를 캐묻지 않았고 서로의 비밀을 허용했다.
세이지의 재능은 샘의 이끌어냄을 통해 놀랍게 꽃핀다.
소설 속에서 세이지가, 또는 세이지와 샘이 함께 개발하는 게임들 속 세상이 하나씩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에멜리 디킨슨의 시구가 몇 구절씩 위에서 떨어지고 깃털펜이 쏘아 맞추면 화면에서 휘익 하며 터지는 까만 잉크..
쓰나미 큰 폭풍우 속에서 양동이와 장난감 삽을 들고 바닷가를 맨발로 종종 달려가는 아가의 뒷모습..
낙엽이 아름다운 평화로운 메이플 타운, 멋진 콧수염의 메이어 시장님..
소설 속에 쓰나미 같은 진짜 사고들이 닥쳐온다.
세이지를 깊은 상실과 슬픔에서 구해낸 것이
샘이 그녀를 위해 창조한 새로운 세상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지극한 사랑에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