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고 해도 거창하게 멋진 유럽을 다녀온 건 아니었다. 그냥 LA에는 친구와 함께 가서, 감사하게도 친구의 친구 집에서 지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서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뉴욕은 그나마 보스턴에서 버스를 타고 갔는데, (코로나 전에는 Megabus라고 1달러 티켓이 있었다. 보통 이른 새벽이나 막차 시간대에 많았다.) 당일치기로 거의 15시간 동안 뉴욕을 돌아다녔다. 전철이나 택시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무조건 걸어 다녔고, 그 거리를 온몸으로 느낀 게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이때였던 것 같다.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때가. 한국에서 초등학생 시절엔 그냥 노는 게 좋았지만, 사실 아파트 도면 보는 걸 정말 좋아했었다. 레고도 좋아했지만, “여자애가 무슨 레고냐”라는 말 때문에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진 못했다. 대신 도면을 직접 네이버에 검색해서 보면서 그 공간이 어떻게 입체적으로 보일지 상상해 보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가구를 찾아보는 게 재미있었던 기억이 문득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떠올랐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공부가 싫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지 해서 끝까지 마쳤다. 막상 미국에 살다 보니, 외국인이 정말 정착해서 사는 게 힘들다는 걸 학교에서 느꼈다. 그리고 갭이어(gap year)를 가지면서 건물 디자인 쪽에 관심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며 건축 설계사라는 직업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건축 설계사를 찾아봤을 땐 정말 신기했고 너무 멋졌다. 내가 구상한 공간이나 건물 디자인이 현실이 되어, 내가 바란 공간을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쓰고, 느끼고, 편안함을 얻는다는 게 정말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건축 디자인도 결국은 미술 쪽과 연결되다 보니,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서 건축학과로 진학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중·고등학생 떼는 미술이나 음악 중 하나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앉아서 그림 그리는 것보다는 음악이 좋아서 악기를 선택했었다.
여기서 다시 한국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춤추는 걸 좋아해 재즈 댄스를 배우기도 했고, 우연히 TV에서 플룻 광고를 본 뒤 초등학교 3학년 때 방과 후 수업으로 플룻을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이걸 쭉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악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딱 맞다. 전혀 관심 없었던 ‘미술’ 분야를 언젠가 내가 전공으로 택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