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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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님

열정이 다시 차오를 때, 잠깐이라도 달려보려고요.
기록, 시작합니다.

제가 어떻게 대학을 정하고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부터 먼저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제법 시간이 흘러서, 사실 그때의 기억이 완전히 선명하진 않지만, 미국에서는 보통 11학년이나 12학년쯤에 입시 준비를 시작하고 대학에 지원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저 역시 학교에서 대학 준비를 도와주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때 저는 대학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고 싶은 대학에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좋은 직장을 얻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면, 저는 그 시기에 도대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고, 미국에 온 것 역시 큰 계획이나 방향 없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었기 때문에, 영어를 말하고 쓰는 것 자체가 저에겐 큰 벽이었어요.
하루하루가 낯설고 버겁게 느껴지던 시절이었고,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의욕도 사라졌죠.
당연히 내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떤 분야로 나아가고 싶은지도 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졸업’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12학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졸업 후에는 더 무기력해졌습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고, 15시간 넘게 잠만 자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흘려보내는 일도 흔했어요.
그 시기의 저는 멈춰 있었고, 사실 그 멈춤이 얼마나 오래 갈지조차 알 수 없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런 저를 묵묵히 지켜보며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으셨던 부모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식을 보며 얼마나 답답하고 걱정되셨을까요.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마음을 잘 몰랐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려주고 믿어주셨던 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저는 1년간의 갭이어(Gap Year)를 갖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걸 그 시기에 실감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남의 돈을 번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거였어요.
힘들게 번 돈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내가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졌고, 돈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되었죠.
그 돈으로는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기도 했고, 짧게나마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제가 직접 번 돈으로 여행을 떠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서부 LA에서는 처음으로 대도시의 활기와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껴봤고,
동부 뉴욕에선 뉴요커처럼 거리를 걸으며 낯선 도시의 공기와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였죠.
혼자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지하철을 타고 익숙하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니면서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런 경험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저는 처음으로
‘내가 뭘 좋아할까?’, ‘앞으로 뭘 해보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었는데,
삶의 리듬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마음속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