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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현 Nov 08. 2021

눈 말고 비처럼 다가오는

끝이 좋지 않은 인간관계와 끝이 좋은 인간관계


   그날 겨울, 하늘 높은 곳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결정체를 이루어 새하얀 눈이 되어 내리는 듯하였다. 눈으로 덮여버린 백색의 동네를 보니, 내 마음도 동심으로 덮이는 것 같았다. '내가 눈 내리는 걸 좋아했었구나!'하고 깨닫는다. 왠지 너무 설레고 마냥 눈이 너무 좋았다. 밟을 때마다 꾹꾹 소리를 내며 푹푹 꺼지는 구름 같은 눈길이 재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덮인 도로에 염화칼슘이 뿌려진다. 자동차가 지나다니기 시작한다. 순백의 눈길에 염화칼슘과 검은 타이어 자국이 더해지니, 동네는 순식간에 새까만 더러운 구정물 범벅이 된다. 회색빛 묽은 반죽 같은 우중충한 눈길을 걸으니, 그 길의 구정물이 신발과 바지에 슬쩍 자꾸 튄다. 이런 눈길을 걷는 건 영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눈이 내린 이후 외출하는 건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이런 눈처럼, 많은 인간관계가 새하얀 설렘으로 다가왔다가 새까만 불편으로 끝난다. 나는 순수하게 아이처럼 그 사람을 좋아하고 동경했는데, 이제 그 사람은 나에게 우중충한 힘겨움을 주는 것 같다. 이렇게 그 끝이 아름답지 못한 인간관계가 있다. 눈처럼 다가온 그로 인해 나는 결국 힘겨워하고 낙심한다.



   그러다 며칠 후, 잠결에 일어나 보니 빗소리가 들린다. 하늘 높은 곳에서 내린 비가 더러운 눈들로 덮인 동네를 시원하게 씻겨내린다. 맑은 겨울비는 이전의 눈과는 달리, 그 끝에 우리 동네를 깨끗하게 만든다. 눈의 구정물을 씻겨내는 빗물을 보니 내 속도 시원하다.


   눈 말고 비처럼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었던 처음과 맑고 깨끗하게 나를 대하는 마지막이 서로 같다. 나의 우중충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나도 누군가에게 눈처럼 다가가는 사람이 아니라 비처럼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설레는 처음처럼 끝도 맑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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