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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현 Nov 08. 2021

죽음을 앞두고 한 눈썹 문신

젊음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죽어가는 현실 사이의 괴리

   어머니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이제껏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반복의 느낌이 아니었다. 스물두 살의 나는 이제 어머니께서 당신을 괴롭게 하던 그 병에서 회복되지 못하실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고통의 가운데에서 그리고 죽음의 앞에서 어머니의 얼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늙어가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동안의 투병 중에도 아파 보이지 않는 얼굴을 간직하고 계셨다. 약물로 인한 붓기 때문인 것인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통통하게 생기 있어 보였다. 그리고 외출하지 않고 거의 집에만 계시다 보니 어머니의 피부는 하얬다. 어머니의 고집 센 성격을 보여주듯이, 눈매는 선명하고 큰 눈동자에서는 활력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에 병실 침대에 누워계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지난 한두 달 사이에 그런 활기와 젊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죽음을 앞둔 채, 볼살이 쪼그라들어서 해골의 형상이 보였다. 하얬던 피부는 말라죽어버린 나무의 안면같이 거친 누런 빛을 내었다. 고집이 느껴졌던 눈매는 힘을 잃은 채, 아직 어린 막내아들인 나를 그저 올려다보고 계신다. 누워계신 어머니는 뼈가 보일 듯한 앙상한 오른손으로 이따금 손거울을 드신다. 그러곤 손거울에 비친, 볼품없게 변한 당신의 얼굴을 왼손으로 쓰다듬으신다. 초췌하게 완전히 망가져가는 당신의 모습이 싫으셨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거울만 보신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병실에 들어와 어머니의 얼굴을 처음 보고서 깜짝 놀랐다. 어머니께서 그 며칠 사이에 당신의 눈썹에 눈썹 문신을 그려 놓으신 것이다. 아마 다른 환자를 방문하고자 병실을 들락날락하던 아주머니를 통해 눈썹 문신을 시술받으신 것 같았다. 나를 보더니 눈썹 문신을 했는데 예쁘게 된 것 같냐고 물으신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도무지 그 말에 대답할 수 없다. 병으로 아파 고통스러워하고 곧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면서도, 이 지경에 눈썹 문신 시술을 받는다는 게 도무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나치게 짙고 선명한 검은 눈썹과 해골처럼 초췌하고 뿌연 피부는 도무지 조화를 이루지 않았다. 눈썹이 너무 이상하다고, 안 한 게 훨씬 낫다고, 아파 죽으려는 사람이 도대체 왜 눈썹 문신을 한 거냐고 짜증을 내버리고 말았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나의 대답에 실망하시면서, 활력 없는 조용한 분개를 내셨다. 


   분명, 스물두 살 그때의 나는 어머니께서 죽음을 앞에 두고서 눈썹 문신을 그리신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몇 년이 지나 어두운 자취방에서 이 일을 되짚어 본다. 그러다 보니 그때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께서 죽음을 앞두고 눈썹 문신을 한 까닭을 지금은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께서는 병들어 죽어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은 채 늙어가는 당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게 정말로 싫으셨나 보다. 질병에 옭아매인 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고통 속에서도, 늙음으로부터는 벗어나고 싶으셨나 보다. 어쩌면 거울 안의 늙어가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고통이 침대 위에서 죽어가는 고통만큼이나 컸던 걸까?


   이제 비단 그때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마주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떠올린다. 모두가 그토록 늙어가는 것을 외면하려 하나, 실상 병들고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 사람은 젊음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죽음에 들어가는 것 같다. 이와 같은 모순이 생로병사라는 고통의 바다이자 피조물의 썩어짐의 종살이이며, 어머니께서 죽음을 앞두고 눈썹 문신을 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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