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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현 Nov 12. 2021

왜 다들 스마트폰만 바라볼까?

관계 맺기에 대한 현대인들의 갈망이 표출된 형태

   지하철 칸 어느 한 곳에 자리 잡고 우두커니 짝다리로 선다. 마주 보는 곳에 앉아있는 여자의 눈은 오른손에 들린 자기 휴대폰 화면에 쏠려 있다. 내가 그 여자를 쳐다봐도, 그 여자는 휴대폰에 열중하느라 내가 자기를 보고 있는지도 모를 거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죄다 스마트폰에 몰두하고 있다. 머리 색깔도, 얼굴 색깔도, 옷 색깔도 다들 가지각색이지만, 그들의 포즈와 표정과 시선은 동일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스마트폰으로 무얼 그렇게 보고 있는 걸까? 주변 남녀들의 휴대폰 화면을 흘깃 슬쩍 훔쳐본다. 그들이 보고 있는 화면 속에선, 서로 같은 모양의 동물 얼굴들이 가로, 세로 일렬로 정렬되고, 한번 정렬된 동물 얼굴들은 시원하게 터뜨려진다. 요즘은 이런 게임을 많이 하나보다. 또는 하얀 배경에 글이 쭉 써져 있는데, 큰 따옴표로 표시된 대사가 나오고 옛된 느낌의 단어들이 중간중간 있는 걸 보면 무협 소설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얼른 나도 스마트폰을 꺼내어 그것으로 뭐라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혹자들은 이처럼 사람들이 어디서든 기계처럼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광경이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단절된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물론 나도 어디서든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데 예외는 아니다. 스마트폰에 카트라이더라는 레이싱 게임도 하나 설치해놓고 자주 즐긴다. 공부를 하다가도 자꾸만 휴대전화에 손이 간다. 문자 내용을 확인하는 걸 시작으로, 하고 있던 일은 잊고 몇십 분 동안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그런데 코로나가 유행하여 사람들을 가능한 만나지 않으며 자취 생활을 하는 이후, 이렇게 스마트폰에 중독된 정도가 더 강해졌다. 다른 무언가를 하던 중에도 문자 알림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자동 반사적으로 부근의 휴대폰을 찾는다. 긴급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둥의 스팸 문자이면 실망하고, 마음 가는 사람이 보낸 친근한 문자이면 반갑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아마 스팸 전화일 것 같은데도 굳이 한번 받아본다. 기계음이 들리면 실망하고, 낯선 사람의 목소리이면 반갑다.      


   나는 왜 자꾸 휴대전화에 이끌리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휴대폰을 바라보는 건, 사실 휴대폰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는 행위인 것 같다. 전염병을 이유로 스스로 선택한 고립의 시기에, 나는 휴대전화와 휴대전화 너머 누군가를 더 기다리게 되었다. 진정 바라는 건 카트라이더 게임이 아니라, 그 게임을 하는 중에 걸려온 누군가의 전화 한 통인지 모르겠다. 내가 공부를 하다가 자꾸만 휴대전화에 손을 대는 건, 공부를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건 스마트폰이란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로 전달되는 누군가의 목소리 인지도. 나는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좋아하는 것일 테다. 전염병으로 타인과 단절된 시기에, 사람을 더 갈망하게 된 만큼 스마트폰을 더 갈망하게 되었으리라.


   지하철 안 서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게 아닐까. 누군가는 그들이 하나같이 지하철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현대인 사이의 차가운 관계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하철 안 그러한 풍경은, 사실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그들의 열렬한 갈망이 표출된 행태일지도. 그들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소설을 읽고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좋아하는 누군가의 전화나 문자를 기다리는, 일종의 준비 동작일 수 있다.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만 바라보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은, 관계 맺기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식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열렬히 갈망하는 그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의미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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