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야기
아빠는 지금도 누구나 알만한 회사 간부였다.
시골에서 올라와 나름 성공한 삶이었을까? 어찌 되었던 먹고살만했던 거 같다.
그 시절 텔레비전도 흔하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텔레비전을 봤었다.
그리고 아빠의 취미는 매번 바뀌어 새를 기르고 싶으면 온 집안을 새장으로 채우고
음악이 듣고 싶으면 어느 날 짐짝만 한 전축이 들어오고
또 어느 날은 두꺼운 책 전집이 들어오고, LP판이 책장 가득 꽂혀있었다.
어느 날은 과실수.... 취미만 누릴 줄 알았지 그 뒤치다꺼리는 엄마 몫이었던 거 같다.
어린 기억에 투덜투덜 거리며 청소하는 엄마의 기억이 남아있다.
이런 아빠는 바지바람도 심했던 거 같다. 그 당시 육성회비란게 있었다. 난 650원은 기억하고 있었다. 다달이 내는 거였는데 늘 1년 거를 한꺼번에 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450원 내는 친구도 있었고 그것도 제때 못 내면 집에 갔다 와야 했단다.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아빠는 교무실로 모든 선생님들 선물을 박스로 보냈었다. 이도 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인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그 이후 학교에 발걸음을 안 했다. 눈물이 나서....
그때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새장 안에서 살다가 갑자기 새장 밖으로 나온 거 같았다고 한다.
아빠의 기억은 나에게도 짧다.
아빠의 부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엄마가 억척같이 우리를 키워냈다.
그새장안에 있던 작은 새가 세상에 나가서 독수리가 된 듯 강해졌다.
그 덕분에 난 세상물정 모르고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갔던 거 같다.
늘 엄마가 했던 말은 나도 너처럼 야리야리했다. 이 집구석에 시집와서 이렇게 되었다고 늘 말했다.
이 집구석은 나의 성씨를 물려준 집구석을 말한다.
엄마의 이마는 대빡이마다. 사전을 찾아도 대빡이마에 대해 찾아볼 수 없다. 엄마 이마는
예전 영화배우 김지미이마를 닮았다. 지금은 일부러 돈 주고 이마에 뭘 넣기도 하는데 그 당시 엄마는 그 이마 때문에 팔자가 세다고 생각했나 보다.
다행히 내이마는 납작하다. 보는 사람마다 내이마를 까보이며 우리 딸 이마 이쁘지요? 물어보는 게 일이다.
그느므 이마에 대해 누가 거짓 정보를 줘서 우리 엄마를 힘들게 했을까?
이렇게 새장 밖으로 나온 울 엄마.
울 엄마의 기억을 조금씩 꺼내보려 한다.
살아생전 많은 이야기를 못해서 엄마는 늘 남의 딸은 조잘조잘 엄마랑 이야기도 잘하는데 너는 말을 안 하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나가서 에너지를 다 쓰고 들어오니 집에 오면 과묵할 밖에.
꿈에서까지 나를 남겨두고 떠나 걱정이 되었는지 내가 어둠을 헤매고 있으면 나를 손짓해 불러 밝은 곳으로 인도했다.
엄마 어떻게 왔어 엄마 죽었잖아 하며 손을 잡으려 해도 엄마 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손짓으로 불러 나를 다른 곳으로 인도했다.
오늘의 엄마이야기다
못한 것만 기억나는 딸이라 이렇게 그리움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