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야기
학창 시절 아침이면 이유 없이 짜증이 났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내 이름을 동네 떠나가라 부르는 엄마 목소리도 다 짜증이 났다.
일단 일어나 등교 준비하는 나한테 꼼지락거린다고 잔소리하는 엄마가 또 짜증을 나게 한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도 많이 하고 생사 고비도 많이 넘겼던 나를 늘 염려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먹거리도 늘 신경 썼던 거 같다.
늦었는데 푸짐한 밥상을 대령한다. 이 밥상을 건네기 위해 부엌에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모르는 거 아니다.... 아니 그땐 몰랐다. 그저 큰소리로 부르는 나의 이름에 짜증이 날뿐.
그 마음을 내가 자식을 낳고 자식입에 먹을 거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일단 난 심기가 뒤틀려 밥도 안 먹고 도시락도 안 가지고 학교에 간다.
그러면 나는 안다. 엄마가 도시락을 챙겨서 그 안에 용돈까지 넣어서 가지고 온다는 걸.
엄마의 도시락 반찬은 나의 교실에서 인기가 좋았다.
가짓수도 많았지만 엄마의 요리 솜씨가 좋아 늘 새로운 메뉴로 특별한 반찬으로 싸줬다.
그렇게 맛있는 반찬은 금방 없어진다 친구들이 다 가져간다. 그렇게 서로 반찬을 공유해 먹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난 입이 짧아 내 반찬이 떨어지면 밥을 남겨갔다.
엄마는 밥을 남겨가면 또 걱정이 태산이다. 그리고 반찬이 없어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뜨거운 밥 위에 치즈를 얻어서 도시락을 쌌었다.
내가 유일하게 먹는 친구 반찬은 가장 친한 친구의 김치 그것도 총각김치였다.
커다란 총각김치 너무 맛있었다. 그때 그 총각김치는 내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반찬이었다.
엄마는 서울 사람이라 새우젓만 넣고 김치를 담갔고, 친구의 엄마는 전라도 사람이라 젓갈을 많이 넣었던 거 같다. 지금까지도 난 그 김치 맛으로 김치를 담근다.
사건은 그 친했던 친구가 나의 시누가 되었고
그 친구의 엄마가 나의 시엄마가 되었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3개월 만에 결혼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결혼하면 맛있는 김치는 평생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가장 큰 실수였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시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아보질 못했다.
지금 내 나이보다 젊을 때 어머님은 나를 며느리로
지금의 나의 며느리들보다 어린 나이로 난 어머님을 이렇게 우린 만났다.
난 지금도 우리 며느리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저렇게 예쁘고 가녀린 아이인데 왜 그토록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켰을까?
그건 시집살이도 아닌 일꾼하나 집에 들여온 거처럼 그렇게 행동하셨다.
블로그 님의 감자볶음 레시피가 엄마의 도시락 반찬을 생각나게 하고
여기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네.
아직도 나의 마음에 흘러버려야 할 흙탕물이 남아 있었나?
이미 오래전 나는 괜찮아졌다.
아니 마음에 폭신한 스펀지를 채우고 웬만하면 아프지 않게 받아서 부드럽게 터치한다.
우리 어머님 종갓집 종손 며느리로 엄청난 시집살이를 하셨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당하실 성품은 아니신 듯...
그 자리에 내가 자리 잡고
나에게 옛 습성대로 다 하셨어도 그땐 난 잘 몰랐다.
어? 왜 이렇게 되지? 그냥 그런가 보다 아무 생각 없이 순종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맞장구를 안치고 지금까지 살아왔기엔
우리 어머님도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온순해지셨다.
역시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그래도 가끔 "어흥" 해도 그때처럼 사시나무 떨듯 안 떤다. 하나도 안 무섭다 이빨 빠진 호랑이는 물어도 안 아픈 줄 내 다 안다.
그래서 이젠 어머님이 종손 며느리는 하늘에서 내린다고 하시면
그거 아니 거 등요...! 자리가 만들 거 등요...!! 하고 소심한 댓 구도 한다.
암튼 감자볶음에서 총각김치 언젠가 글 썼던 조끼 주인
고작 3개월 만에 만남에서 지금까지......
모든 게 하늘이 나에게 준 운명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