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열린 작은 선생님 선거

막둥이가 바라본 휴먼

by 막둥님

우리 집에 서열 1위 작은 휴먼이 있다.
나는 종종 그를 관찰하며 이 세상의 질서를 배워간다.
물론 나는 이 집의 댕댕이 막둥이다. 누가 뭐래도 이 집 서열은 모두 내 아래였다.


그런 작은 휴먼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며칠 전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이름하여, '작은 선생님 선거'.
처음에는 그냥 인기투표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 선거, 생각보다 꽤나 진지하고 묵직했다.

사실 나는 우리 집에만 작은 휴먼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린이집이라는 곳에는, 세상에, 작은 휴먼들이 무리 지어 존재했다.
다들 서로 다른 집의 서열 1위들인 건가?
그 조그마한 생명체들이 진지한 얼굴로 선거를 준비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작은 선생님 선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발표를 연습하고, 누군가는 포스터를 그리고, 누군가는 친구에게 다가가 “내 생각은 이래”라고 말하는 용기를 낸다.
그 모습들이 낯설었다. 아니, 경이로웠다.

나는 ‘앉아’, ‘엎드려’, ‘손’, ‘기다려’ 정도만 알고도 칭찬과 간식을 얻는다.
그걸로도 하루가 충분히 행복하다.
하지만 작은 휴먼들은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걸 배운다.
공정함, 배려, 협동, 그리고 리더십.
다섯 살이면 세상을 다 알기엔 너무 이른 시기 아닌가 싶은데…
이 어린아이들은 그 이른 시기에도 용기 있게 한 표를 던질 줄 안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 작은 휴먼이 무려 후보로 뽑혔다.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집안은 난리가 났다.
어른 휴먼들은 “부정선거 있는 거 아냐?” 하고 농담처럼 말하면서도,
어디 가서 투표소 점검이라도 나갈 태세였다.

후보들이 유세를 하는 사진도 봤다.
표정엔 긴장도 있었고, 포스터엔 서툰 글씨도 있었지만,
그 안엔 분명한 진심이 있었다.
경쟁보다 응원이 우선이었고, 이기려 하기보다 함께 하려는 마음이 더 컸다.
나 같은 댕댕이도 그 분위기에서 배려와 사랑을 느꼈으니,
그 공기가 얼마나 따뜻했는지 짐작해 보라.

그리고 드디어 선거 당일.
작은 투표소가 예쁘게 꾸며졌고, 작은 신분증과 투표용지를 들고
한 명씩 차례차례 들어가 정성스럽게 한 표를 찍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 집 작은 휴먼, 분명 후보 1번이었는데…
그 아이가 꾹 눌러 찍은 한 표는 2번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코끝이 간질 했고, 마음이 뭉클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걸 알면서도,
진짜 ‘공정함’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그 어린아이가 기꺼이 자신의 한 표를 내어준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결정을.

이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나, 댕댕이지만 감동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휴먼들이 부끄러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른이라고, 더 많이 안다고, 더 잘 판단한다고 말하는 휴먼들이
과연 저 고사리 손만큼의 용기를 가진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 공정한 선택 끝에,
우리 집 서열 1위 작은 휴먼은 당당히 ‘작은 선생님’으로 당선됐다.

집안은 또 한 번 축제 분위기.
영상통화가 오가고, 앞으로는 “작은 선생님”이라 불러야 한다는 집안 규칙이 생겼다.
이제 이름은 없다. 작은 선생님일 뿐이다.

“작은 선생님, 그래서 오늘은 뭐 하셨어요?”
“친구들 브로콜리 나눠줬어.”

세상에.
그 조그마한 입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그런 말을 내뱉는다.

정말 멋진 작은 휴먼이다.
나는 말은 못 하지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작은 선생님, 나중에 진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이렇게 위대한 용기를 가진 작은 손이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은 아직 괜찮다고, 나는 믿고 싶어졌다.


휴먼들은 반성해라 이런 작은 휴먼도 가지고 있는 용기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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