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두 소녀의 우정과 질투

by 막둥님

이틀에 걸쳐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았다. 사실 이 작품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전에, 어디선가 스쳐 지나듯 포스팅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충 훑듯 읽은 글이었고,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한 포스팅이었다. 막상 직접 드라마를 보니 그동안 놓쳤던 감정의 결이 파도처럼 밀려와, 결국 이틀 동안 마음을 묶어두고 집중하게 되었다.


가을의 문턱,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유난히 크게 다가오던 시기였다. 낮엔 아직 덥고 습해 맥을 못 추다가도, 저녁이 되면 서늘한 바람 속에 괜히 마음이 허전해졌다. 그럴 때 문득 어디엔가 나를 맡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번엔 그 자리를 이 드라마가 채워주었다.


드라마는 90년대 초,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두 여자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재개발로 이사 다니던 풍경, 학교 전학, 그리고 PC 통신이 등장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대의 공기다. 처음엔 내 어린 시절과 같은 시기를 다루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대가 조금은 달랐다. 하지만 익숙한 장면들이 곳곳에서 반짝이며 기억을 건드린다. 휴대폰이 보편화되기 전,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 같은 PC 통신, 그리고 잠시 등장하는 ‘아이러브스쿨’ 같은 단어가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간다. 온라인 대화라는 낯설지만도, 묘하게 따뜻했던 연결 방식도 반갑게 다가왔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은중과 상연, 두 소녀의 관계가 있다. 우정이면서도 경쟁이고, 동경이면서도 질투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두 아이를 통해 펼쳐진다. 그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잠시라도 자기 안의 묻어둔 감정을 소환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감정은 단순히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삶을 마주할 때 중요한 기초가 된다.


은중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란다. 그 결핍은 때로 부끄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당시 학교에서 진행되던 ‘가정환경조사’라는 이름의 제도는 부모의 학력과 직업, 생활수준을 묻곤 했는데,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은중은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먹고 자라며 꿋꿋이 성장한다. 반면 상연은 새 아파트에 이사 오고, 하얗고 예쁜 얼굴에 남부러울 것 없는 조건을 가진 아이다. 두 소녀의 환경은 대조적이지만, 그래서 더 서로를 끌어당기고, 또 더 날카롭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교실에서도 차별은 이어진다. 사는 지역, 생활 수준, 성적이 아이들을 나누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그 앞에서 은중은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두 아이는 결국 서로에게서 이길 수 없는 무언가를 보며, 계속 부딪히고 회복하고, 다시 부딪히기를 반복한다. 마치 삶의 축소판 같다.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열등감과 상처가 생기지만, 그 끝에는 결국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를 보며 나 역시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기도하고, 또 어떤 말은 삶의 좌표를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언어는 때로는 꿈을 막는 거짓 선지자가 되고, 때로는 삶을 살리는 생명의 숨결이 되기도 한다.


〈은중과 상연〉에서 특히 마음에 남은 장면은, 상연이 은중의 엄마가 끓여주는 따뜻한 수제비를 그리워하는 대목이다. 화려한 아파트와 안정된 가정도 채워주지 못한 공허함을, 소박하지만 따뜻한 수제비 한 그릇이 달래준다. 그 수제비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는 따스한 손길, 마음의 소울 푸드였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지금, 내 마음에도 은중의 엄마가 끓여주던 그 수제비가 한 그릇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수제비를 끓여야겠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달래고 관계를 이어주는 따뜻한 음식으로.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마디, 따뜻한 그릇이 되어주고 싶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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