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뱃속이 늘 무겁게 차 있는 기분이 시작된 건.
먹어서 가득한 날도 있고, 오래도록 쌓여온 것들이 안팎에서 나를 누르는 날도 있다.
그 눌림은 곧 기분의 상처가 되고, 결국 우울이 되어 삶의 자신감을 조금씩 앗아간다.
한때는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라도 품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힘을 잃은 듯하다.
예전엔 하루 한 끼, 많아야 두 끼로도 충분했는데, 이제는 주방의 권세를 쥐고 하루 세끼를 차려내다 보니 오히려 과부하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몸은 무겁고, 밤은 더 깊어지고, 수면은 자꾸만 얕아진다.
렘수면 속의 세계는 나를 환대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한 장막으로 둘러싼다. 그곳을 헤매고 있으면 어김없이 막둥이가 합세한다. 침대 옆에서 조그만 몸을 구부리고 한숨을 쉰다. 소리를 내는 대신, 숨결로 나를 깨운다.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그 작은 존재가 나의 어지러운 밤을 지탱해 준다.
그럼에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배출하는 것’—내가 그동안 자랑삼아 말하던 일상의 균형은 무너지고 있다. 잘 자는 건 더는 자신하지 못하겠고, 잘 먹는다는 건 이제는 조금 덜 먹는 것으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살아 계셨을 때 하셨던 말씀.
세상 구경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못내 아쉬워, 돌아가시면 바다에 뿌려 달라 하셨다. 물길 따라 흘러 다니며 마음껏 다니고 싶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소원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우리의 방식대로 무덤을 만들고, 우리의 형식대로 추모를 했다. 살아서는 원하던 길을 걷지 못하고, 죽어서조차 바라던 길을 가지 못한 엄마. 그 사실은 오래도록 나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밤이 깊어지면 생각은 더 파도가 되어 몰려온다.
주방에 남은 기름 냄새,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은 그릇들, 막둥이의 한숨과 나의 호흡이 엇갈리는 순간들. 그럴 때면 오래된 동전을 더듬듯, 예전의 나를 찾아 헤맨다. 자유롭다고 여겼던 텅 빈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채움이 오히려 짐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채움이 늘 해답은 아니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걸으며, 작은 의식들을 다시 세우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창문을 열고 막둥이와 바람을 들이마시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일.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차근차근 세워가는 일.
엄마의 말씀이 이제는 잔잔한 이야기처럼 내 안에 남아, 파도처럼 흔들린다.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내 두 다리로 걸으며 세상을 보고 싶다.
오늘은 많이 웃지 못했지만, 막둥이가 이마를 비비던 찰나에 숨이 가벼워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잘 자지 못한 밤이 있어도, 아침은 다시 찾아온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걷고, 작은 습관을 쌓아간다면, 언젠가 오늘의 발걸음도 바다로 이어질 것이다.
밤마다 막둥이의 숨결을 들으며 다짐한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나만의 길을 걸어가기로.
그리고 그 길마다 작은 평안이 쌓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