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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May 06. 2020

결혼은 안 하고 살 줄 알았지

삼포세대, 골드미스로도 괜찮을 것 같았거든.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연애, 결혼, 아이 갖는 것을 포기한 세대, 뉴스에서 많이 보던 그 단어, 삼포세대가 나였다.

 

대학 시절, 부모님 등골 브레이커가 되어가며 인턴도 했고 졸업하자마자 취업도 했지만, 지방에서 상경한 탓에 월급의 절반 이상이 월세와 생활비로 나갔다. 회사 동료들과 어울려 놀며 씀씀이가 커졌고 휘황찬란한 서울의 삶을 늘 동경해오던 20대였던지라, 마음 독하게 먹고 회사-집만 반복하며 돈 모으는 일 따위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때문에 월급날이 다가올 때쯤의 통장 잔고는 늘 0에 가까운 숫자였다.


'20대 때는 경험이 중요하대. 나는 버는 돈 전부 경험하는 데 쏟아부을 거야.'

'상경해보니 진짜 거긴 혼자 살아도 할 게 엄-청 많아.'

이런 말들로 친구들의 쓴소리를 사전 차단했고, 저축하고 있지 않는 나를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그들에게 나는 자연스레 골드미스가 될 친구가 되어 있었고 나는 스스로를 삼포세대라 일컬으며 위로하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의 생활이 지루해지던 때쯤, 미국에서 1년 반 동안 일해볼 기회가 생겼다. 통장에 남아있던 돈을 탈탈 털어 비자를 받고, 미국행 비행기표를 샀다. '어차피 결혼도 안 할 텐데, 이력서에 경력 한 줄 더 추가하면 좋지-'

라는 들뜬 마음으로 통장이 또다시 텅장되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1년 반의 기간 동안 열심히 일했고, 많이 여행 다녔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평생을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지금의 남자 친구까지. 그러자 이제껏 '삼포세대'라는 단어만으로 합리화되던 내 생활들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갑자기 결혼 생각이 들 줄 알았으면 그때 흥청망청 쓰는 게 아니었는데...'

신나게 즐기며 놀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결혼식부터 같이 살 집, 우리 경우엔 국제커플이라 비자발급비까지. 결혼하는 데 있어 돈 보다 중요한 것들도 물론 많겠지만, 머릿속 문제 중 가장 골치 아픈 건 역시나 금전 문제였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와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은 더 간절해지기만 했다.


그렇게, 나의 결혼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비자 문제로 그를 미국에 남겨둔 채 한국으로 돌아와 고향 본가에서 지내게 되었고, 집 근처 작은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서울, 미국에서 받던 급여의 반토막을 받으니 괜히 내 가치가 떨어진 것만 같고, 이전과 같은 회사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많이 불안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멘탈이 많이 무너졌던 것 같다.


또, 결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은 어찌 그리 많은지. 욕심부리지 않고 필요한 것만으로 예산을 짰음에도 불구하고 그 액수는 내 예상을 한참 빗나가는 어마 무시한 숫자였다. 하지만 부모님 노후를 위한 돈인 걸 뻔히 알면서 그걸 가로채 도움받고 싶진 않았고, 이런 내 생각에 남자 친구도 적극 동의해 우린 일단 허리띠부터 졸라 매고 긴축 생활을 유지하며, 퇴근 후 집에서 할 만한 투잡을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남자 친구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현실을 머리로는 늘 받아들이고 있지만 불쑥불쑥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며 머리가 띵-해지곤 했고, 그럴 때마다 그가 더 그립고 보고 싶었다.


'평생을 함께 할 텐데, 지금 1, 2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지.'

'난 우리가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이런 말들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고, 많이 힘들고 지치지만 어떤 면에선 우리가 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고3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할 때도 이렇게 의욕 넘치고 동기부여가 확실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나름 잘 버텨내고 있고 돈 모으는 재미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이제껏 되는대로 편하게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고치고 많은 것을 내려놓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할 미래를 그리며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고 좋았다.




이렇게 우리의 결혼 도전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갑자기 터진 코로나19에 조금 더 힘들어졌고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게 됐지만, '이 또한 지나가겠지-'하는 마음으로 다시 만날 날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간절히 바라고 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지난 20대 시절을 돌아보며 가끔 후회도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분명 내가 배운 것은 있었을 거라 믿는다.


어떤 대단한 성공 스토리가 담긴 도전기는 아니지만, 결혼도 척척 하고 귀여운 아기도 낳아 행복하게만 지내는 것 같은 친구들을 보며 '나는 뭐가 이렇게 힘들까-' 하고 한숨 쉬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에이, 이 사람도 이렇게 허덕이며 살고 있네.' 하며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누군가와의 만남이 두근거림보다 캄캄한 미래로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통해 꼭 용기와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라는 꽃말을 가졌다는 프리지아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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