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미국 선거인단 제도
창피하지만, 난 정말 무지했다.
미국인 남자 친구를 만나 비자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이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몰랐을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 매스컴을 뜨겁게 달궜던 미국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그 시절 그냥 모른 채 넘어갔었다. '아니, 시민들이 힐러리를 더 많이 뽑았다는데 대통령은 트럼프가 됐다고? 엥?' 이 다였다. 이유를 찾아봤을 법도 한데 어영부영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누가 대통령이 되냐에 따라 앞으로 내가 살 곳의 정책이나 규정들이 달라지니 유심히 살펴보고 공부하게 됐다. 우선, 미국의 선거제도부터.
미국은 참 독특한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나라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여러 주들이 모여 만들어진 국가라는 것에서부터 그 배경이 설명된다고 보면 됐다. 그 당시, 왕이라는 절대권력의 군주가 있던 여타 국가들과는 달리 주권을 가진 여러 개의 주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었기에 초기엔 대통령을 정하지 말자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각 주의 대표자들이 모인 의회 중심의 국가에서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이 독재와 같은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협정이나 협약을 맺으려면 사인을 해야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했고 그런 대외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대통령인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뽑는 방식에 대한 이권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을 시민투표가 아닌 의회에서 뽑자는 의견에는 대부분 동의했으나 주별 몇 명의 의원을 선발할지에 대해서는 인구수가 많은 주와 그렇지 않은 주 간의 팽팽한 신경전이 있었던 것이다. (인구비례로 의원 수를 정하자! vs 주별 의원 수는 동일하게!) 이런 배경에서 나오게 된 게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모든 주가 동일하게 2명의 상원의원을 가지고, 인구수에 비례해 하원의원 수를 정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미국의 선거제도에 대해 80%는 넘게 이해했다 보면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수가 각 주별 선거인단의 숫자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의원에서 선거인단으로 대통령 선출 주체가 바뀌게 된 이유는 의원들은 모두 워싱턴에 모여 지내고 있기에 그 안에서 또다시 당파가 갈리며 벌어질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고, 선거인단을 선출해내는 방식은 시민투표 또는 정당 지명 등 주마다 다르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시민 투표로 주별 지지당이 정해지고 지지당으로 선출된 당이 그 주의 선거인단 표를 대부분 다 가져가게 되는 방식. 대통령은 전체 주에서 선거인단 표를 더 많이 가져간 사람으로 정해지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국민 한 명 한 명이 투표한 결과를 전체 집계하여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지만, 미국은 전체 국민이 지지한 대통령과 선거인단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는 제도인 것 같았다. 이제야 왜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가 당선된 건지 이해가 되었다.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건 미국의 헌법을 건드는 것과도 같다 하여 불가능할 거라 보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 제도가 정말 국민들을 위한 민주적인 제도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좀 남는다.
영주권자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투표권이 당연히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한 걱정이나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지켜봐 오며 훗날 내가 그곳에서 자식을 낳고 터를 잡고 살게 된다면 투표권에 대한 욕심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살게 될 나라에 대한 지식은 다다익선이니 조금씩 꾸준히 공부해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