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갤러리가 된 섬 연홍도

by 소안


드디어 이 섬에 오게 되었다.

낚시하기 위해 자주 찾던 거금도의 작은 포구에서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안내 표지판을 보고 꼭 가 봐야지 하고 눈여겨봤던 섬이다.

작은 섬에 미술관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게다가 지붕이 없다는 문구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드넓은 바다에 이 섬 말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섬이 있지만, 유독 이 섬에 관심이 갔다.

그 때문에 언젠가 와 볼 기회를 마련하려 했고 드디어 실행한 것이다.

연홍도에 가려면 육지인 고흥 녹동에서 연륙교를 건너 옛 한센병 수용소로 더 잘 알려진 소록도를 거쳐 소록도에서 또 연륙교 건너 거금도로 들어가 신양 선착장에서 이번에는 배를 타야 한다. 하지만 눈앞에 빤히 바라다보이는 조그만 섬이라 작은 배가 10분이면 도착하기 때문에 배를 못 타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섬에 들어갈 수가 있다


어촌 마을 선착장에 오니 아침이라 그런지 여행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출어를 서두르는 작은 배들만 해면을 가르고 있었고 간혹 운동을 나왔는지 팔을 높이 추어올리면 빠르게 걷는 어촌 아주머니들만 보일 뿐이었다.

작은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또 다른 작은 배에 올랐다나 외에 섬 주민인 듯한 사람 몇 명,

모두 다 해봐야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을 싣고 배는 섬 쪽으로 뱃머리를 틀었다.

이윽고,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연홍도에 도착하여 사람들을 순식간에 내려놓은 배는 섬에서 나가는 사람을 기다리려고 다시 포구의 말뚝에 묶였다.

섬에 들어서니 두 겹으로 쌓아 올린 커다란 돌 표지석이 외지인을 맞는다.

연홍도의 표지석 아랫부분에 섬의 역사가 새겨져 있으나 섬의 내력은 익히 알고 있기에 그냥 지나쳐 동네로 걸음을 옮겼다.

섬 입구의 방파제에 거대한 조개 모양의 장식품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형상을 한 스틸 조각 작품이 썰렁하다.

섬 안내판의 지도를 머리에 저장하고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을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이 왜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이름 지었는지 알 듯했다.

골목골목 집 담벼락에 그려진 미술 작품들과 고기잡이에 쓰이는 도구들의 변신이 도시 미술관에 전시된 값비싼 작품들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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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섬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다른 관광지의 섬들처럼 근사한 카페도, 맛있는 먹거리도, 그 어떤 놀 거리도 없는, 하지만 이러한 아무것도 없음이 오롯한 여행 감성을 느낄 수 있기에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마을 담벼락 곳곳에 예술이라고 말하기에는 순수한, 손재주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각종 조형물

을 보는 것만도 사람의 손에 의해 가공된 아름다움보다 몇 곱절 가치 있음으로 느껴질 테고 눈으로 하는 여행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섬에 들어오기 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나 자신도 예상할 수 없었던, 그러한 안온감이 이 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은 평화로움도 의외로 빨리 깨져 버렸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 어느새 섬을 한 바퀴 다 돌아버린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느긋하게 섬을 사부작거리다 느지막이 오후에 섬을 나가 다른 여행지로 갈려고 했던 것이 그만 차질이 생겨 버렸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섬을 들어온 게 불과 한 시간 남짓, 오전을 벗어나지 못한 시곗바늘의 게으름을 질책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여행은 늘 계획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지 않기에 일부러 시간을 죽이려 할 필요는 없었다. 마을 끝 바닷가 인어를 닮은 묘령의 여인 옆 벤치에 퍼질러 앉았다.


정면에 보이는 방파제엔 섬 노인의 낚싯대가 곧추세워지며 고도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고 배 위의 어촌 부부는 연신 바닷속에 잠긴 통발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인어를 닮은 묘령의 여인은 나처럼 고정된 자세로 앉아 미소 짓고 있다. 시선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그것으로 보아 갈매기들의 잔망스러운 날갯짓을 좇는 듯하다. 뭉게구름 한 뭉텅이도 나의 시곗바늘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바닷가의 풍경이 작은 재미로 다가와 섬을 나갈 시간을 당겨 버렸으므로 ….

어떤 의미에서는 불행이기도 했다.

다소 심심하긴 해도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이 허풍같이 느껴지긴 했으나 섬 자체의 아기자기한 평화로움은 오염된 도시인의 마음을 정화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는데 섬을 나가야 한다는 현실이,

그리하여 또다시 우글거리는 세상으로 들어가 삶이라는 무게를 끌어안고 노심초사해야 한다는 사실이,

섬을 나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왔다.

선착장 옆, 섬과는 어울리지 않는 콘크리트 2층 건물 앞을 서성이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위험하게 길 가운데 앉아 오후의 망중한을 즐기는 듯 오롯하기도 하고 또는 시름시름하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섬에는 차가 없기 때문이란 걸 공터 구석에 방치된 낡은 1t 트럭을 보고야 알았다.

섬에 딱 한 대뿐인 차란 게 거기 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차마저도 별로 사용할 가치가 없어 보였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낡고 녹이 슬어 철판이 떨어져 나가 도무지 생각해도 섬에 딱 한 대뿐인 차라고 친절하게 안내 문구까지 걸어 놓은 건 딱히 관광 자원이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는 도시인인 나의 삐딱한 시선 탓 이리라,

이렇게 내 삶 한구석에 또 하나의 섬 연흥도를 저장했다

그다지, 아님 특별하게 아름답지도 볼거리도 즐비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마음속에서 쉽게 퇴색되지는 않을 그것 같다.

그래서였다. 섬을 나오는 배 위에서 내 시선이 자꾸만 섬으로 옮겨지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일 터였다

섬 속의 섬인 연홍도를 나왔다.

그러나 섬을 나와서도 여전히 섬에 갇혀 사부작거릴 뿐, 배를 타고 연 홍도를 나와봐야 내 몸뚱어리는 부처님 손바닥처럼 여전히 섬을 벗어나지를 못했다.

연홍도의 어미 섬이라고 한다면 맞을 테다

거금도,

육지인 고흥 땅에서 다리를 두 개나 건너야 올 수 있는 작지 않은 섬

그 옛날 암울했던 흑백텔레비전 시절 온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던 김일 선생의 고향이란 건 섬을 들어오는 순간 누구나 알게 된다….

섬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큰 규모의 김일 체육관이 있고 김일 선생의 홍보물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김일 선생의 고향이라는 홍보물을 보고 있자니 이분의 경기가 있던 날 술도가를 하는 복순이네 집에서 50원을 주고 흑백텔레비전 앞에 숨죽이고 앉아 있던 시절이 떠오른다. 박치기 한방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환호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술도가를 하는 아버지 백으로 온 동네 아이들의 대장 노롯을 했던 복순이 얼굴도 슬그머니 기억 속을 뛰쳐나오려고 하는 데 과거와 현재 사이에 쳐진 세월의 가로막이 너무 높아 추억이 넘지를 못하고 쩔쩔매기만 한다….

거금도에 당도하면 웅장한 동상인지 조각 작품인지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있는, 무언가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 같은 조형물이 시선을 뺏는다.

이게 누구를 애도하는 동상인지 아님 어느 수준 높은 조각가 양반의 예술 작품인지 도통 섬과 연결 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한번 훌쩍 올려다볼 뿐 그다지 관심이 안가 지는 건

바다를 보려는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기 때문이다.

바다만 보고 싶은 사람에겐 눈요깃감으로 서 있는 거대한 조형물은 그냥 고철 덩어리에 불과 한 모습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다에 온 건 그냥 바다만 보기 위함일 텐데 바다를 좇는 사람들의 사선 앞에 조형물은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였다


거금도 해안 도로를 유유자적 거리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은, 무엇으로 남아있는 게 있을까?

생각해보니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여행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그런 여행이 아닌 도시의 군상들 러시에서 탈피하여 쉼을 위해 무작정 떠나 온 것이기에 떠남 하나로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단 떠나온 길에서 그 무엇도 남기지 않는다는 건 여행자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무언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끼적거림이었다.

여행에서 인상 깊게 남는 것이 없더라도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게 하는 게 글이기 때문이다.

거금도를 나와 육지로 들어서자 섬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가슴을 옥좨 왔다.

섬의 파란 바다 색깔과는 대조적인 거무튀튀한 오염된 듯한 물빛과 셀 수 없이 많은 배가 정박해 있는 포구

그리고 도로에 오가는 바쁜 자동차들의 경적,

숨통이 막혀 온다..

번잡하고 적당히 더러워지고 적당함을 넘어선 혼잡함이 느껴지는 아수라 같은 세상에 발을 디디니 연홍도의 고요가 금세 손짓을 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것들이 치명적인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삶을 매달고 애면글면 물질의 탑을 쌓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벋어나 평일 유유자적 거릴 수 있음이, 내 나이는 이미 인생의 모든 통과의례를 거첫으니 나를 위해 조금 너그러워져도 된다고 변명을 하며 주문을 외워본다. 디에세오스타.디에세오스타...

섬을 건너가는 다리 아래 물이 많이 줄었다.

시간이 늦은 오후로 접어들어 썰물이 한참 진행 중인 탓이다.

그 섬마을은 몇 시간을 걸어 다녀도 거의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늘 그런 곳을 찾고 있었던 때에 순간에 떠올랐던 연홍도

그곳은 죽었던 나의 감성을 되살라는 불씨가 되었고 고요하게 꿈틀거리지만, 명백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가슴을 콩닥 이게 하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이 작은 설렘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고 당분간은 또다시 나는 행복한 인간임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듯 허풍을 떨 것이다.

섬에서의 반나절이 이제 집요하게, 광범위하게 나의 뇌세포를 자극하여 삶의 고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게 만들 것 같다.

연홍도의 소박함에 아니 지붕이 없다는 미술관에 가슴을 두고 몸만 온 것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하자면 그 섬은 참으로 부담스럽기만 했다.

너무 조용한 게 부담이고, 걷는 것조차 도시의 오염을 떨어트리는 것 같아 부담이었고, 섬 곳곳을 돌아보는 것도 시선을 분산시켜 부담이었다



지금 시간을 인어를 닮은 묘령의 여인 옆에 앉아 윤슬을 바라보던 그때로 되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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