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점심을 먹고 집을 나왔다.
외곽 순환도로에 차를 올리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달리는 데, 우려했던 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삶의 틈바구니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나까지 교통 정체를 유발한 것 같아 슬며시 미안함이 다가온다.
24시간 음악만 들려주는 클래식 앱을 오디오에 페어링 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필 교황곡이 교통 체증의 지루함을 날려버렸다.
빨리 가야 할 이유도 없는데 정체로 인해 돋아나는 짜증은 습관적인 것 같아 마음의 여유를 좀 더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하듯 부드럽고 잔잔한 물결의 일렁임처럼,
외곽도로를 벗어나 자유로에 이르니, 시야에 펼쳐지는 곧게 뻗은 도로가 체한 속을 뻥 뚫어주는 것처럼 시원하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살짝 내렸다.
높은 기온은 높았으나 가을임을 증명하듯 상큼한 바람 앞에 맥을 추지 못했다.
자동차에 담뿍 싱그러움이 들어와 목덜미를 파고든다.
파주 헤이리 예술 마을엔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모습은 군데군데에서 눈에 띌 뿐이었다.
많은 작가들의 소규모 갤러리와 게다가 각종 개인 뮤지엄들이 걸음을 멈추게 하지만 목적지가 분명한 나들이이기에 시선을 거두고 느리게 걸었다.
안 와본 사람들은 있어도 한 번만 와본 사람은 없다는 식상한 말처럼 나 또한 모든 풍경과 모든 사물들이 익숙한 탓인 게다.
예술 마을 맨 끄트머리에 웅장한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음악실카메라타”
황인용 씨가 운영하는 전문 음악 감상실이다.
황인용 씨는 작고하신 이종환 씨가 진행하는 mbc "별이 빛나는 밤에"와 kbs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하며 음악으로 젊은이들의 질풍노도를 다독여 주었다.
이 두 분이 진행한 밤 10시 음악 방송을 들으며 내 신청곡이 나올까 귀 기울였던 그 시절의 추억에 이끌려 가끔 오곤 하는 데 음악실에 들어서며 오늘 프로그램은 어떤 음악으로 채워질까 기대해 본다.
평일이라 그런지 음악실은 한산했다.
내 나이정도의 연인, 그리고 모두 나처럼 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 몇이 고작이었다
은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놀러 와서 황인용씨의 이름에 이끌려 온 사람들이 아니고 오롯이 음악을 들으려는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기에 정숙한 가운데 집중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커피와 약간의 브레드를 주문하고 듣고 싶은 곡을 신청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쾨헬 N0 467 "
안단테로 연주하는 부드러운 곡이다.
안단테는 느리게 연주하라는 뜻이다.
커피잔이 비워질 즈음 다른 곡이 끝나고 내가 신청한 곡이 초대형 스피커를 빠져나와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 인생에도 가끔 안단테가 필요하다.
우리는 태어나서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프레스토 템페스토소(빠르고, 열정적으로)로 살아간다.
지나치게 빠르게 달리는 일상 속에서, 숨 한 번 고르지 못한 채 휘몰아치는 이 음표들처럼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을 꼭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로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닌데 남들보다 뒤 쳐질 것 같은 자의식에 모든 게 급한 것이다. 내가 교통 체증을 맞고 짜증이 일었던 것도 이와 같은 관념에서 오는 습관일 테다.
살면서 때로는 템포를 늦추고, 감정을 담아, 한 음 한 음을 노래하듯 살아가야 할 때도 있다. 음악에서 안단테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다.
인생에서도 살아가는 기술보다는 감정이 더 필요할 것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과 온기가 삶 속에 녹아든다면 자연스럽게 삶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5월, 1년간 머물렀던 섬생활을 청산하고 도시의 집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섬 생활의 후유증인지 도시 생활에 가슴이 답답하고 마치 우울증이라도 온 것처럼 심신이 가라앉아있다. 마음이 자꾸만 도시를 벗어나 바다로 이끈다.
음악을 들으며 섬을 거닐던 평화로운 시간의 나를 떠 올렸다.
(차이콥스키 - 멜로디 Op.42 No.3)
이곡은 카타빌레로 연주하는 곡이다
섬의 그날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부드럽게 일렁이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파도는 칸타빌레로 부드럽고 유려하게 섬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아침 바다의 배려에 밖으로 나가 바닷가를 걸었다.
안단테 칸타빌레로 천천히, 노래하듯 멀리 점점이 떠 있는 많은 섬들을 눈에 넣으며 사부작 거렸다.
바다는 오케스트라가 되어 파도 소리를 연주하고 있었다.
갈매기들의 울음도 안단테 칸타빌레로 끼룩거렸다.
백사장에 한발 한발 걸음을 뗼 때마다 새겨지는 내 발자국도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에 맞춰 선명하게 새겨졌다. 때맞춰 순간순간 흐르는 감정도 바닷속으로 스며들었다.
문득 커피 생각이 났다.
작은 어촌 마을의 카페에 들어가니,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때 카페를 가득 메우고 있는 바이올린 선율도 ‘칸타빌레’였다. 그 음악이 마치 바다와 바람과 햇살이 만들어낸 음악 같았다.
그 음악에 몸을 맡기고 오롯이 나를 즐겼다.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노라니 바다가 네게 말하는 듯했다
“천천히, 노래하듯 살아가라 안단테 칸타빌레처럼.”
천천히 노래하듯, 바다처럼 깊고 넓게. 삶도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고 깨달았다.
음악에서 안단테 칸타빌레는 하나의 지시어지만, 사람의 삶에 지시가 아닌 태도로 접목시킨다면 조금은 여유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모든 날이 분주하고, 매 순간이 결과를 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종종 리듬을 잃는다.
하루는 재촉되고, 관계는 채워지지 않은 채 비워지고, 마음은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
그럴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안단테 칸타빌레를 들어보자.
천천히 노래하듯 산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슬플 땐 조용히 울고, 기쁠 땐 거리낌 없이 웃는 일.
조금은 느리게 가더라도, 매 순간을 음미하며 살아가는 일.
스스로의 리듬을 지키면서, 내 인생의 멜로디를 소중히 여기는 일.
어떤 날은 거칠게 휘몰아치는 폭풍 속을 지나야 하고,
어떤 날은 조용한 현악기처럼 섬세한 하루를 맞이하기도 한다.
그 모든 변화와 울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노래하듯 살아가는 것.
삶은 결국 한 곡의 긴 음악 같고, 우리는 그 음악의 연주자다.
서툴러도 좋다.
박자를 놓쳐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 깃든 삶의 선율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심장까지 파고드는 음악을 들으며 나는 섬으로 가고 싶은 잔망한 마음을 다독였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누구를 만나든 조금 더 안단테 하고 칸타빌레 하게 사람들과 섞여 진심을 담아 살아가자며....
(어머! 사라사테 군요? 그런데 파도 소리 때문인가? 파도 소리에 묻혀버리는 존재의 허무, 나타낼 수 없는 가치의 표류, 이러한 이유로 지고이네르바이즌의 바이올린이 절규하는 것 같아요!!")
내 소설의 한 장면이다.
1년 살이하고 나와 집에 오니 도시 생활 자체가 나를 절규하게 했다.
사람이 살면서 절망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절망에 빠져 절규하고 애달파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소설 속 바이올린이 파도소리에 묻히기 싫어 절규하는 것처럼 사람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절규는 자신을 더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사리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즌을 듣고 있다 보면 평화로움뒤에 그 어떤 절망의 기운을 느낀다
그런데 결국은 절망뒤에 평화가 온다는 걸 사리사테는 말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
러시아워를 맞아 도로는 더욱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하지만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안단테 칸타빌레가 내 마음을 누긋하게 녹여주었고 지고이네르바이즌도 절규가 아닌 열정으로 내 귀를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