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행 중이었다.
편의점에 들러 물건을 집어들고, 결제하려고 큐알코드를 생성해 내밀었는데 그 순간,
그리 늙어 보이지 않는 점주는 큐알코드 결제를 할 줄 몰라 쩔쩔매는 게 아닌가?
급기야 편의점 2층 자택의 딸까지 불러 겨우 결제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곤 하는 말
“아 참, 이상한 게 자꾸 나와 골치 아파 죽겠네.”
이분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데, 아마도 IT와는 거리가 먼 세상을 사는 듯해서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에게 이런 결제 시스템은 그저 편리한 것이었는데, 그분에게는 충분히 ‘이상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웃었던 건
점주의 ‘이상한 거’라는 말과 결제를 하지 못해 쩔쩔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세상이 얼마나 조용히 사람을 갈라놓는지… 그 순간이 너무 씁쓸했기 때문이었다.
문학에서 ‘이상함’은 종종 낯섦에서 시작한다.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들이 느끼는 부조리도, 결국은 익숙했던 세계가 갑자기 낯설어졌을 때 생겨난다.
그날 편의점 점주가 마주한 큐알코드는
어쩌면 그분에게 작은 카프카였을지도 모른다.
IT, AI.
이제는 특별한 단어도 아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사람들의 머릿속은 그만큼 더 복잡해져 간다.
첨단에 뒤처지면 편의점 점주처럼 “쉰세대 소리” 듣기 십상이고 따라가자니 점주의 말처럼 여간 불편하기만 한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다고.
그런데 나는 요즘 세상이 좋다.
나는 천성이 느긋하다.
무엇이든 급할 게 없다.
그리고 그런 내가 살아가기에 지금은 참 좋은 시대다.
손가락 하나면 해결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외출 중에도 집의 보일러 온도를 조절하고, 방문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인한다.
소파에 누워 거들먹거리며 말 한마디만 하면 필요한 정보가 줄줄이 나온다.
쇼핑도, 식사도, 보고 싶은 사람과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이 편리함이 이제는 삶의 리듬이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편리함이 단지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편리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편리함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적으로 말하자면,
기술은 배경이 아니라 ‘서사’가 된다.
인간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술이 조용히 주인공의 자리를 가져간다.
즉, 기술이 사람을 지배하고 사람은 기술에 길들여져 휴머니즘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내 시대까지야 그럭저럭 사람이 우선인 세상을 살 수 있다지만,
기술에 지배당해 사는 후세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시간은 금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늘 와닿지는 않았다.
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편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활을 손가락으로 한다.
게으른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세상이다.
나는 여행을 할 때 목적지를 정하지 않는다.
아침에 날씨를 한 번 보고, 그날 기분이 끌리는 곳으로 향한다.
유유자적 걷다가 스마트폰 지도를 켜서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로 연결되는지 확인하며 사브작거리는 재미가 참 좋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여행조차도,
기계와 함께하는 방식에 익숙해졌구나.
아침이면 침대 협탁 위의 스마트폰이 말을 거는 듯하다.
“주인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모르면’ 고민했다.
책을 찾아보고, 사람에게 묻고, 스스로 생각하며 시간을 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모르면 검색한다.
모르면 AI에게 묻는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지식적인 AI 시스템에 길들여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AI는 친절하고 빠르다.
때로는 틀리지만, 대체로 정확하다.
하지만 AI때문에 때론 오해를 받는것도 있어 불쾌하다
잘 써놓은 글을 보면 AI의 능력을 빌리지 않았을까 하는 사람들의 미심쩍어하는 태도엔 불쾌감이 치솟는다.
AI가 써준 글은 집중하고 읽어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는데
그런것을 볼 줄 아는 능력도 이제는 길러야 할 필요가 있음을 난 그들에게 말 해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AI에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내 사고방식까지 바꾸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모르겠다”라는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모르는 순간이 불편해졌다.
불확실함은 참기 어려워졌고,
답이 나오지 않는 시간은 낭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편의점 점주에게 큐알코드 결제는 ‘이상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제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세상이 이상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 사실이 조금 무섭다.
하지만 동시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변화가 싫지 않다.
이순.
지나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더 짧기만 한 나이.
세상 변화에 재빠르게 동승하며,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실컷 누리며 살고 싶은 욕심 아닌 욕심을 내보는 요즘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협탁 위의 그 작은 기계가 내미는 “편리함”이라는 손을
아무렇지 않게 잡는다.
다만, 한 가지는 잊지 않으려 한다.
‘이상한 것’이란,
세상이 잘못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
점주가 보여준 당황스러움은 결국 내 미래일 수도 있고,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이 편리한 세상 속에서
조금 더 인간답게 느리게 웃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