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묘한 터널 길을 보았다.
나제통문(羅濟通門).
사진 속 바위에 새겨진 글자에 호기심이 생겨 주위를 들어보니 이 문이 옛 신라와 백제를 이어주는 관문이었음을 상징한다고 씌어있었다.
단순히 후세 사람들이 역사적 자료에 의거해 만들어진 길이었음을 알고 저으기 실망 하긴 했지만 하지만 네 글자는, 단순히 “길이 뚫린 문”이 아니라 시간을 관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바위산을 뚫고 지나가는 그 짧은 터널은 도로이지만, 그 위에 새겨진 이름은 오래전부터 이곳이 백제와 신라를 이어 주던 길목이었음을 사실로 말해는 것 같았다.
‘나제통문’은 흔히 백제(百濟)와 신라(新羅)가 맞닿던 접경의 길, 서로 왕래하던 통로로 이야기하는데 어쨌든 신라의 경상도 땅과 백제의 전라도 땅의 접경 지역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일테다
나제통문을 경계로 신라와 백제로 나눠지는데
‘羅濟’라는 한자 자체가 가진 상징은 강렬하게 느껴진다
羅(나) : 신라를 뜻하는 글자
濟(제) : 백제를 뜻하는 글자
즉, 羅濟는 “신라와 백제”, 두 나라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표현이었다
후세 사람들이 글자를 새겼다는 것은, 이 길이 단순한 길이 아니라 두 세계가 만나는 경계이자 연결이었음을 인정한 것인 게다
이 길은 분명 전쟁의 시대에도 있었을 테고.
길에 창끝이 번쩍이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길은, 싸움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 길은 사람을 실어 나르고
사람은 물건을 옮기고.
물건은 소식을 낳고, 소식은 마음을 움직이며 사람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길이 된 것이다.
백제의 토기와 장인의 손길이, 신라의 비단과 철의 기술이, 이 길을 넘어 서로의 땅을 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말과 말이 오가고, 억양과 풍습이 섞이고, 낯선 얼굴이 익숙한 얼굴이 되는 일
그 모든 것이 결국 연결의 역사인 것이다
백제와 신라, ‘연결’은 언제나 위험하고도 눈부셨다
역사적으로 백제와 신라는 단순히 친했다, 싸웠다로 정리되지 않는다
어떤 시기에는 협력했고,
어떤 시기에는 치열하게 충돌했다.
삼국은 늘 이해관계 속에서 손을 잡기도 했고, 등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변화의 한복판에도 길은 말없이 남아 있다
바위산을 뚫고 지나가는 나제통문에서 배움을 얻는다.
“너희가 어떤 관계였든,
결국 서로에게 닿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나라는 더더욱 혼자 설 수 없다.
적대하던 순간에도 경계는 존재했고, 경계가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문과 길이 생겼다.
이 문은 때로는 전쟁의 통로였겠지만, 동시에 화해의 가능이기도 했을 것이다
돌을 뚫고 만든 문을 보니 마음을 뚫는 전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위의 바위는 단단할 테고
사람의 오해도 단단하고
편견은 더 단단하다
서로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단정하는 순간, 마음은 돌처럼 굳어버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음에 길을 내야 한다
누군가는 먼저 다가오길 기다릴게 아니라.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길이란, 결국 누군가의 용기인 것이다
백제와 신라가 이어졌던 이 통로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 같았다
연결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고.
연결은 누군가가 뚫어낸 결과라고.
우리도 서로의 ‘나제통문’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상대의 사정을 한 번 더 들어보는 것,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
마음속 바위를 조금씩 깎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생긴다
그리고 그 작은 구멍이
사람을 통과시키고,
마음을 통과시키고,
관계를 다시 흐르게 한다.
연결은 과거를 아름답게 만들고, 미래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늘 “승자와 패자”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제
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닿았는가,
무엇이 무엇과 이어졌는 가르 이야기 해야 한다
길이 있었기에 문화가 오갔고,
왕래가 있었기에 서로를 알게 되었고,
서로를 알게 되었기에 마음은 더 넓어졌다
그래서 나는 나제통문이 단지 과거의 유적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너도 누군가에게 닿아라.
너도 누군가를 통과시켜라.
너도 길이 되어라.”
바위에 새겨진 한 줄의 감격
바위에 새겨진 羅濟通門.
그 글자는 단지 옛 글씨가 아니라,
서로 달랐던 두 세계가 결국 마주 보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백제와 신라가 이어졌듯,
오늘, 우리도
내 마음에 나제통문 하나를 내보자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다정해지는 것.
그게 결국 역사를 만들고,
관계를 살리고,
세상을 앞으로 보내는 가장 오래된 방식의 연결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