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정 May 26. 2020

초라함에 매몰되다

돌부리에 걸려넘어진 날

미디어가, SNS 가 우리를 참 힘들고 버겁게 만든다. 이 SNS는 끊임없이 나에게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를 알라고 각종 증거를 들이댄다. 성공을 했다고 하려면 빌 게이츠 정도는 되어야 하고, 예쁘다고 말하려면 김태희 정도는 생겨야 한다. 우리 주변 사람들도 그렇다. 팬시한 식당에서 근사한 옷을 차려 입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딱 그날에 적절한 장소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이 와중에도 바쁘게 일을 하고, 이 와중에도 사람들이 찾는다며 멋진 차림으로 기대를 드러낸다. 나만, 이렇게 초라한가? 그런데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내가 초라하고 힘들면 우리나라 국민 절반은 힘들어 죽었어야 한다. 그래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내 무릎에 난 상처가 다리 부러진 사람의 고통보다 아픈 날이 있다.


일찌감치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가 몇 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가족들과 건강한 삶을 일구어 가던 친구였다. 한국에서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을 다니던 그녀는 구릿빛의 건강한 얼굴과 테니스로 다져진 몸매, 공원에서 아이들과의 일상, 교회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사는 인생을 SNS에 자주 올리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한국에 잠시 와서 10년 넘게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친구들은 보통 대기업에 리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하얀 얼굴에 날씬한 몸, 그리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헐렁한 청바지에 스웨트 셔츠를 입는 그녀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다. 한마디로 너무 화려하고 잘 나가고 있는 그녀들과 촌부와 같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 달라 충격에 결국 앓아 누었다. 몇 년 만에 한국 행이기에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혹은 한국의 독한 기운들이 그녀의 순수한 몸을 자극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그녀는 나머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병원을 다니며 아픈 몸을 돌보다가 돌아갔다.


스포츠 에이전시를 하는 사장이 어느 날 그런 얘기를 한다. 스포츠 스타들이랑 사는 건 일반인들이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란다. 그들은 세계 1위를 위해서 자신의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터지는 것을 매일 감당한 사람들이다. 이미 몸이 망가지는 것을 각오하고 진통제를 먹어가며 훈련을 하고 시합을 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1위를 못하는 날에는 울분을 터뜨리고, 더욱 강하게 자신을 밀어붙였다. 그들의 승부욕과 극기는 일반인들의 수준, 혹은 상상의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이 승부욕이 발동을 한다. 사소한 말싸움도 힘겨워질 수 있다. 승리를 위한 루틴에 방해가 되었을 때, 잔인할 정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올림픽을 나갈 정도의 승부욕과 극기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 최고를 유지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미 DNA를 바꾸었고 나와 남을 괴롭히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금메달이 소중하고, 세계 1위도 중요한데, 그 독기에 이를 정도의 정신이 나를 공격하며 망가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어디까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내일이면 또 괜찮아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이혼은 실전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