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두 시. 카페 안의 에어컨이 너무 세게 돌았다. 수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물방울이 테이블 위로 번지는 걸 보며 폰을 만지작거렸다.
알림이 떴다.
이재원: 수진아, 요즘 성수동에 생긴 카페 가봤어? 드립커피 잘한다더라.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수진은 화면을 두 번 읽었다. 이재원. 대학 동기. 졸업 후 5년간 같은 업계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 단체 톡에서 가끔 말을 섞는 정도. 그가 먼저 개인 메시지를 보낸 건 처음이었다.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수진은 답장을 쓰다 지우고, 다시 쓰다 지웠다. 결국 보낸 건 이것이었다.
수진: 오 어디? 나 요즘 카페 개척 중인데
답장은 3분 뒤에 왔다. 주소와 함께 짧은 코멘트. "창가 자리가 좋아." 수진은 그 메시지를 캡처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들기 전에 두 번 더 열어봤다.
두 번째 메시지는 일주일 뒤에 왔다.
이재원: 주말 잘 보내고 있어?
별것 아닌 안부. 수진은 알았다. 이건 별것 아닌 안부라는 걸. 하지만 토요일 오전 열한 시에, 아무 이유 없이, 자기를 떠올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 어딘가를 눌렀다.
수진: 응 집에서 넷플릭스ㅋㅋ 너는?
이재원: 나도 비슷. 비 와서 나가기 싫다
수진은 창밖을 봤다. 비가 왔다. 같은 비를 보고 있다는 게, 바보 같지만 좋았다.
세 번째는 수진의 생일이었다.
자정이 넘자마자 알림이 떴다. 부모님보다 빨랐다.
이재원: 생일 축하해 수진아. 올해도 좋은 일만 있길.
수진은 이불 속에서 폰 화면의 불빛을 바라봤다. 자정. 이 사람은 날짜가 바뀌는 걸 기다렸다가 보낸 걸까. 아니면 알람을 맞춰뒀을까. 어느 쪽이든 자기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같은 의미였다.
수진: 고마워ㅠㅠ 자정에 보내주다니
이재원: 당연하지
당연하지. 수진은 그 세 글자를 오래 들여다봤다. 당연하다는 건 뭘까. 습관인가. 의무인가. 아니면.
그날 밤 수진은 이재원의 인스타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었다. 2019년 제주도 사진. 2021년 졸업식. 2023년 어딘가의 루프탑. 그의 일상에 자기가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메시지는 계속 왔다. 불규칙하지만 끊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던 날, 인스타 스토리에 야근 사진을 올렸다. 한 시간 뒤 메시지가 왔다.
이재원: 야근이야? 무리하지 마. 밥은 먹었어?
수진은 그 메시지를 보고 화장실에서 울었다. 울면서도 웃겼다. 문자 하나에 눈물이 나는 서른한 살이 자기라니.
다른 날에는 수진이 좋아하는 밴드의 새 앨범이 나왔을 때.
이재원: 너 혁오 좋아하지 않았어? 새 앨범 나왔더라
수진은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 단체 톡에서 한번,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 이야기가 나왔을 때 혁오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걸 기억하는 건가.
수진: 맞아 대박 오늘 출근길에 들었어!! 넌 어떤 음악 좋아해?
이재원: 나는 장르 안 가리는 편. 좋은 거 있으면 공유해줘
대화는 늘 이 정도에서 끝났다. 깊어지려는 순간 자연스럽게 마무리됐다. 수진은 그게 이재원의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다정하지만 선을 지키는 사람. 서두르지 않는 사람. 그래서 더 믿을 수 있는 사람.
반년이 지났다.
수진의 폰에는 이재원과의 대화가 스크롤 세 번은 내려야 끝나는 길이로 쌓여 있었다. 고백을 생각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샤워하다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잠들기 직전에.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
근거는 있었다. 먼저 연락하는 사람. 내 취향을 기억하는 사람. 힘들 때 알아채는 사람. 이게 관심이 아니면 뭘까.
수진은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갔다. 이재원도 왔다. 술자리 끝에 둘이 나란히 걸었다. 밤공기가 차가웠고 이재원은 코트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수진아, 오늘 즐거웠어."
"나도."
"잘 들어가."
수진은 돌아서서 걸었다. 열 걸음쯤 갔을 때 뒤를 돌아봤다. 이재원은 폰을 보고 있었다. 화면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수진은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발견은 우연이었다.
회사 점심시간. 동료 민지가 폰 화면을 보여줬다.
"야, 너 이거 써봤어? 릴레이트. 인맥 관리 앱."
화면에는 깔끔한 UI가 펼쳐져 있었다. 연락처 목록, 관계 점수 그래프, 메시지 히스토리. 상단에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Relate — 소중한 관계, 놓치지 마세요.
"이게 뭔데?"
"관계 자동화. 연락처 등록하면 AI가 알아서 안부 문자 보내주고, 생일 축하해주고, SNS 보고 맥락에 맞는 메시지도 보내줘. 요즘 스타트업 사람들 다 쓴다."
수진은 민지의 폰을 들여다봤다. 데모 화면. 사용자가 등록한 연락처에 자동으로 발송된 메시지 목록이 나열돼 있었다.
주말 잘 보내고 있어?
야근이야? 무리하지 마. 밥은 먹었어?
너 혁오 좋아하지 않았어? 새 앨범 나왔더라
수진의 손이 굳었다.
"이거… 상대방은 앱이 보낸 건지 본인이 보낸 건지 알 수 있어?"
"알 수 없지. 그게 포인트야. 본인 말투 학습해서 보내거든. 진짜 구분 안 돼."
민지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쓸까 하다가 좀 무서워서. 근데 재원이가 추천하더라. 걔가 베타 테스터였대."
소음이 사라졌다. 구내식당의 수저 소리, 사람들의 대화, 배경 음악. 전부 먼 곳으로 밀려났다.
"뭐라고?"
"이재원. 걔가 이거 초기부터 썼대. 인맥 넓은 애들은 다 쓴다고."
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더 먹었다. 숟가락을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삼켰다.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밤 수진은 이재원과의 대화창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요즘 성수동에 생긴 카페 가봤어?
주말 잘 보내고 있어?
생일 축하해 수진아.
야근이야? 무리하지 마.
너 혁오 좋아하지 않았어?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문장의 온도가 바뀌었다. 따뜻했던 것들이 매끈해졌다. 피부가 아니라 플라스틱을 만지는 감각.
릴레이트 앱을 검색했다. 소개 페이지에 기능 목록이 있었다.
• SNS 분석 기반 맥락 메시지 생성
• 기념일 자동 감지 및 축하 메시지 발송
• 사용자 말투 학습 및 자연어 생성
• 관계 친밀도 점수화 및 관리 대시보드
후기란에 누군가 적었다. "연락처 300명 등록해놨는데, 다들 제가 직접 보낸 줄 알아요. 관계 유지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수진은 폰을 뒤집어 놓았다. 천장을 봤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재원이 릴레이트를 쓴다는 게 확인된 건 아니었다. 민지가 그렇다고 했을 뿐이다. 설령 쓰더라도, 자기에게 보낸 메시지가 자동 발송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가 직접 보냈을 수도 있다. 앱과 별개로, 진짜 관심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분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 메시지들이 따뜻했던 건 사실이다. 읽을 때 가슴이 뛴 것도 사실이다. 야근 후 "밥은 먹었어?"를 보고 운 것도 사실이다. 그 감정은 진짜였다.
메시지가 진짜가 아니어도?
수진은 대화창을 다시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사흘 전이었다.
이재원: 요즘 날씨 좋다. 산책하기 딱이야.
수진은 답장을 쓰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이재원: 잘 지내지? 요즘 바빠?
수진은 읽었다. 답장하지 않았다. 읽씹 표시가 찍혔을 것이다. 이재원이 그걸 볼까. 아니면 앱의 대시보드에 '미응답'이라고 찍히는 걸까.
또 사흘이 지났다.
이재원: 수진아 괜찮아? 연락이 없어서
수진은 폰을 오래 들여다봤다. 이 메시지도 자동일까. '일정 기간 미응답 시 안부 확인 메시지 발송'—그런 기능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재원이 진짜 걱정하는 걸까.
수진은 타이핑을 시작했다.
재원아, 나 물어볼 게 있는데
지웠다.
너 릴레이트 쓰지?
지웠다.
그동안 보낸 메시지 중에 네가 직접 쓴 게 있어?
지웠다.
물어봐서 뭐가 달라지는 걸까. "응, 앱이 보낸 거야"라고 하면? 아니면 "아니, 다 내가 보낸 거야"라고 하면? 후자라 해도 믿을 수 있을까. 전자라 해도 감정이 소급 취소되지는 않는다.
수진은 답장을 보냈다.
수진: 응 잘 지내~ 좀 바빴어
세 시간 뒤 답장이 왔다.
이재원: 다행이다. 무리하지 마!
수진은 웃었다. 입만. 폰을 내려놓고 이를 닦았다. 거울 속 얼굴이 자기를 봤다. 치약 거품이 입가에 묻어 있었다.
거울 속 얼굴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진은 물로 거품을 씻어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불을 껐다.
폰 화면이 어둠 속에서 한 번 깜빡였다. 알림. 수진은 보지 않았다.
이불을 덮었다. 에어컨 소리가 멀어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도 메시지가 올 것이다. 수진은 그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