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1

by 박현아

박정수는 아내의 제사를 지낸 다음 날 블로그를 만들었다.


아들이 제사상을 치우며 말했다. "아버지, 요즘 혼자 뭐 하세요?" 정수는 텔레비전을 본다고 답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신발을 신었다. 현관문이 닫히고, 잠금 장치가 철컥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아파트 전체에 울렸다.


텔레비전은 켜지 않았다. 정수는 식탁에 앉아 아내가 쓰던 태블릿을 열었다. 화면에 네이버 블로그 개설 안내가 떴다. 아내가 죽기 전에 눌러둔 것인지, 광고인지 알 수 없었다. 정수는 닉네임을 '청파동할배'로 정하고 첫 글을 썼다.


첫 번째 글입니다


올해 일흔넷입니다. 글을 잘 못 씁니다. 아내가 죽고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합니다. 오늘 저녁은 즉석밥에 김치를 먹었습니다.



게시 버튼을 누르고 태블릿을 덮었다.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이었다. 쓴다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었다.



다음 날 아침, 댓글이 세 개 달려 있었다.


해피투게더: 첫 글 축하드려요! 꾸준히 써주세요

독서광민지: 즉석밥에 김치, 저도 자주 먹어요. 공감됩니다~

하늘바라기: 글 잘 읽었습니다. 응원합니다!



정수는 댓글을 세 번 읽었다. 가슴 어딘가에서 작은 것이 움직였다.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었다는 사실. 그는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한 글자씩 검지로 눌러가며 타이핑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일주일 뒤, 정수는 매일 글을 올렸다. 장보러 간 이야기, 공원에서 본 고양이, 아내와 갔던 식당이 문을 닫은 이야기. 글은 서툴렀다. 맞춤법이 틀리고 문장이 끊겼다. 하지만 댓글은 꾸준히 달렸다.


댓글을 다는 사람은 대여섯 명으로 고정됐다. 해피투게더, 독서광민지, 하늘바라기, 소확행러버, 맑은하루, 꽃길만걸어. 정수는 이들의 닉네임을 외웠다. 종이에 적어 냉장고 옆에 붙였다.


해피투게더는 항상 첫 번째로 댓글을 달았다. 밝고 긍정적인 문체. 독서광민지는 정수의 글에서 특정 문장을 인용하며 자기 이야기를 덧붙였다. 하늘바라기는 짧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한 줄을 남겼다.


독서광민지: "식당 문 닫은 거 보고 서운했다"는 부분에서 저도 울컥했어요. 저도 엄마랑 자주 가던 분식집이 없어졌거든요. 장소가 사라지면 추억도 갈 곳을 잃는 것 같아요.



정수는 이 댓글을 읽고 한참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짚었다. 장소가 사라지면 추억도 갈 곳을 잃는다. 맞는 말이었다. 정수는 답글을 썼다.


맞습니다. 그 식당 간판이 떼어진 자리에 하얀 벽만 남아 있더라고요. 가게 안이 텅 비어 있는데 냉장고는 아직 있었습니다.



민지가 다시 답글을 달았다.


독서광민지: 냉장고가 아직 있었다는 게 더 슬프네요. 사물은 사람보다 느리게 떠나니까요.



정수는 그 문장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었다. 화면의 온기를 느끼려는 것처럼.



한 달이 지났다. 정수의 블로그 방문자 수는 하루 40에서 50 사이를 오갔다. 대단한 숫자가 아니었지만 정수에게는 충분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댓글을 확인했다. 글을 쓰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환한 시간이 됐다.


정수는 댓글러들의 성격을 파악했다. 해피투게더는 아마 30대 직장인일 것이다. 항상 출근 전 시간대에 댓글을 달았다. 독서광민지는 대학생이거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 문장이 또렷했다. 하늘바라기는 나이가 있는 사람 같았다. 말이 적고 무게가 있었다.


정수는 이들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 민지가 좋아할 만한 문장을 넣고, 해피투게더가 웃을 만한 일상의 장면을 묘사했다. 독자를 의식하는 것. 아내 말고는 그런 대상이 없었던 정수에게 이것은 새로운 감각이었다.


오늘의 글: 병원 다녀왔습니다


정기검진 받으러 갔습니다. 의사가 혈압이 좀 높다고 했습니다. 약을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약봉지가 점점 두꺼워집니다. 집에 오는 길에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의사한테 혼날 일이지만 맛있었습니다.



댓글이 달렸다.


해피투게더: ㅋㅋㅋ 떡볶이 드신 거 너무 귀여우세요! 건강 챙기시면서 가끔은 맛있는 것도 드셔야죠

독서광민지: 약봉지가 두꺼워진다는 표현이 와닿습니다. 건강하세요, 정수님.

맑은하루: 저도 오늘 떡볶이 먹었어요! 동질감 느끼고 갑니다 ㅎㅎ

하늘바라기: 건강이 먼저입니다.



정수는 미소를 지었다. 오래간만에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거울 앞에 서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석 달째가 되었을 때, 정수는 아들에게 전화했다.


"요즘 블로그를 하고 있다."


"블로그요? 아버지가?"


"그래.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잘됐네요, 아버지."


아들의 목소리에는 안도가 섞여 있었다. 정수는 그것을 들었지만 언급하지 않았다.



이상한 점을 처음 발견한 것은 넉 달째였다.


정수는 소확행러버의 댓글을 읽다가 멈췄다.


소확행러버: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나눠주셔서 힘이 돼요



같은 문장이었다. 사흘 전 다른 글에 달린 댓글과. 정수는 뒤로 돌아가 확인했다. 글자 하나 다르지 않았다. 이모지까지 동일했다.


정수는 고개를 기울였다. 복사해서 붙여넣은 것일 수 있었다. 바쁜 사람이 습관적으로 같은 인사를 남기는 것.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해피투게더의 댓글은 항상 정수의 글이 올라간 뒤 정확히 7분에서 12분 사이에 달렸다. 새벽 두 시에 올려도, 오후 네 시에 올려도. 맑은하루는 정수가 음식을 언급하면 반드시 같은 음식을 먹었다고 답했다. 매번.


정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나이 든 사람의 의심병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오래 못 만나면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고 아내가 말한 적 있었다.



다섯 달째, 정수는 실험을 했다. 자기 자신에게 하지 않기로 약속한 실험.


글을 하나 올렸다. 일부러 말이 안 되는 글을.


오늘의 글: 보라색 우산


오늘 길에서 보라색 우산을 주웠습니다. 우산 안에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프랑스어로 인사했습니다.



글을 올리고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9분 후,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해피투게더: 보라색 우산이라니 로맨틱하네요! 고양이도 만나시고 좋은 하루였겠어요

독서광민지: 보라색 우산 속 고양이라니, 동화 같은 장면이네요. 프랑스어 인사라니 상상력이 풍부하세요!

하늘바라기: 좋은 하루 보내셨네요.

소확행러버: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나눠주셔서 힘이 돼요



정수는 태블릿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화면이 천장의 불빛을 반사했다.


아무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다. 고양이가 프랑스어를 한다는데. 아무도.


정수는 해피투게더의 프로필을 눌렀다. 블로그가 있었다. 글이 하나도 없었다. 독서광민지의 프로필을 눌렀다. 같았다. 소확행러버, 맑은하루, 꽃길만걸어. 전부.


프로필 사진은 있었다. 웃고 있는 젊은 여자, 강아지를 안은 남자, 꽃밭 앞의 중년 여성. 정수는 그 사진들을 하나씩 길게 눌러 이미지 검색을 했다. 아들이 알려준 기능이었다.


사진은 전부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정수는 태블릿을 닫지 않았다. 닫을 수 없었다. 화면의 댓글 목록을 내려다보았다. 다섯 달 동안의 대화. 민지와 나눈 추억 이야기. 해피투게더의 응원. 하늘바라기의 짧은 위로.


전부.


정수는 인터넷에 '블로그 댓글봇'을 검색했다. 결과가 쏟아졌다.


신규 블로그 활성화 자동 댓글 서비스. 월 9,900원. 자연스러운 맞춤형 AI 댓글로 블로그 지수를 높여보세요. 닉네임 6개 기본 제공. 게시글 업로드 감지 후 7~15분 내 자동 댓글.


7분에서 15분.


정수는 블로그 관리 페이지를 열었다. '부가 서비스' 탭을 눌렀다. 거기에 있었다.


댓글 활성화 서비스 — 이용 중


가입일: 블로그 개설일과 같은 날.

결제: 아내의 카드.


아내가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함께 신청한 것이었다. 아내는 블로그를 시작하려 했고, 댓글이 달리면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죽었다. 정수가 그 블로그를 이어받았다. 봇은 정수의 글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정수는 그것을 사람이라고 믿었다.


다섯 달.



정수는 냉장고 옆에 붙인 종이를 떼었다. 해피투게더, 독서광민지, 하늘바라기, 소확행러버, 맑은하루, 꽃길만걸어. 정성스럽게 펜으로 쓴 여섯 개의 이름.


종이를 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쓰레기통이 텅 비어 있어서 종이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정수는 부가 서비스 해지 버튼을 눌렀다. '정말 해지하시겠습니까?' 확인 창이 떴다. 정수는 '예'를 눌렀다.


마지막 글을 썼다.


마지막 글입니다


그동안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댓글은 달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해지했으니까.


정수는 태블릿을 식탁 위에 엎어놓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 창가로 갔다. 아파트 15층. 청파동이 내려다보였다. 가로등 불빛이 빗줄기 사이로 번졌다.


정수는 창문을 열었다. 빗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차갑고 날카로운 2월의 비였다.


식탁 위 태블릿 화면이 저절로 켜졌다. 알림이 하나 떴다.


아들이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다.


지훈: 아버지, 블로그 하신다면서요. 저도 구독했어요. 주말에 갈게요.



정수는 빗소리 너머로 그 알림음을 듣지 못했다.


창밖의 비가 방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