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에서 온 진상 같은 여자, 화상에서 온 화상 같은 남자의 리얼한 픽션‧논픽션 세상살이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 두 개의 관점!
그 남자
미세먼지가 온 나라를 삼켜버려서 도대체 아무 곳도 갈 수가 없었네요.
아니 아무 곳도 피할 곳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네요.
요즘은 비가 오는지 날이 좋은지를 확인하는 것보다 미세먼지 농도가 어떤지를
더 많이 확인하고 있네요.
아주 오래 오래간만에 날씨가 좋아서 가족과 나들이를 나갔어요.
다시는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이 날씨가 너무나 아까워서 너무 일찍 서둘렀나 봐요.
덕분에 텅 빈 도로를 아주 여유롭게 운전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그녀에게 도로 연수를 시켜주겠다고 불쑥 말해버렸어요.
그녀는 17년 동안 사고 한 번 내지 않은 무사고 운전자인 동시에 한 번도 운전하지 않은 장롱 면허 소지자였어요.
자세하게 차 조작 방법을 설명한 후 비상등을 켜고, 2차선 도로를 기어가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대부분의 차들은 우리를 비켜갔지만, 나와 딸은 그녀의 수용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 시간여를 끌려 다녔어요.
방지턱이나 신호등이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앞, 뒤로 강제 춤을 추었고,
눈치 없이 삐죽 흘러나오는 땀과 입술 바로 안쪽까지 쉼 없이 흘러나오다가 부서지는 말의 파도는 나를 인내심의 한계까지 몰아붙였지요.
하지만 입술 밖으로 나오는 말들과 얼굴표정은 내면세계와 너무나 달랐는데
그렇게 생각과 말이 반대로 표현되면서 그걸 인식하고 있는 제가 너무나 무서웠어요.
나: (웃으면서) 자, 잘하고 있어. 혹시 힘들면 저기 신호등 지나서 잠깐 쉴까?
그녀: (상기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오늘 잔소리 안 하네? 내 생각에도 오늘 운전이 조금 괜찮은 것 같아. 조금만 더 해볼게.
글쎄? 괜찮지 않은데? 딸은 너무 긴장되고 더운데 잠시 산책하면 안 되겠냐고 말하네요.
오늘은 화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저에게 무척 화가 났네요. 그녀는 제 마음을 혹시 알까요?
어느덧 오늘은 그만하고 다음에 다시 하겠다고 말하는 그녀를 옆 자리에 얼른 태우고 그 도로 위를 순식간에 떠나버렸어요.
그 여자
올봄은 너무나 미세먼지가 심해서 아름다운 계절을 버린 듯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렸어요. 최근에는 철쭉이 가는 곳마다 아름답게 피어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마침 날이 너무 좋아 무작정 나오게 되었어요.
아무런 계획은 없었지만 오히려 목적지가 없어서 어디든지 떠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 모든 것이 좋은 날이기 때문이어서 일까요?
그가 도로 연수를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였고, 뜻하지 않게 자동차 도로 연수를
하게 되었어요.
면허증은 있지만 운전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소위 장롱 면허였어요.
그가 이것저것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심장은 벌렁벌렁 손에 땀은 한가득 몸은 잔뜩 굳어갔지요.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점차 운전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어요. 아니 재미있어지기까지 했어요.
앞만 바라보며 운전하기에도 정신이 없었지만 그가 핸들을 잡아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자상하게 웃으며 평소와는 다르게 대해주어 기분이 좋았어요.
아마 예전 도로 주행 때보다는 운전 실력이 조금 늘어서 그런 걸까요?
다행히 딸도 저의 운전 실력을 칭찬하며 웃어주어서 더욱 기운이 났어요.
다른 친구 엄마들도 운전을 잘하니 우리 엄마도 잘하면 좋겠다고 자주 말하고는
했었는데 곧 그렇게 될 것 같은 기대감에 설레기도 하였어요.
도로주행 연습을 할 때면 항상 화를 내고 직설적으로 잔소리를 하는 그가 오늘은 정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서 좀 더 연습을 해보고 싶어 졌어요.
나: (웃으면서) 나 잘하고 있어? 왠지 오늘은 별다른 소리 안 하네? 하긴 내가 오늘 운전이 좀 되는 날인 것 같아. 조금만 더 해볼게. 근데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 더워?
그: (비교적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정말? 그, 그래. 자, 잘하고 있어. 오늘 많이 덥네. 에어컨 점 켤까?
딸: (손잡이를 여전히 꽉 잡은 채로) 엄마, 저 더운데 잠시만 내려서 산책해도 될까요? 아빠랑 두 분이서 오붓하게 하시면 어떨까요?
나: (차를 세우며)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할까? 있잖아, 다음번에 다시 해볼게요.
내가 내리기도 전에 어느덧 그가 내 자리로 와 있네요. 오랜만에 운전을 해보니 긴장됐지만 오늘은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아서 뿌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천천히 지나갔던 도로를 그는 드라이브시켜주고 싶었는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데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맞는 기분은 최고였어요. 곧 다시 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