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늘 출장이야
진상에서 온 여자, 화상에서 온 남자
by 오 캡틴 마이 캡틴 Dec 12. 2025
진상에서 온 진상 같은 여자, 화상에서 온 화상 같은 남자의 리얼한 픽션‧논픽션 세상살이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 두 개의 관점!
그 남자
봄이라는 계절에 맞지 않게 비가 많이 내렸다.
아무리 바쁘게 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매년 꽃구경은 한 번씩 가고는 했는데...
너무 바쁘게만 사는 것 같아서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꽃구경을 가자고
철썩 같이 약속을 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불길한 징조였다.
준비 없이 맞은 비처럼 예고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었다.
그건 바로 출장.
일이 많거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는 반갑기도 하지만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 갑자기 찾아온 출장은 피하고 싶은 회식과도 같았다.
오늘은 실무담당자 출장이라서 일찍 끝나기는 불을 보듯 뻔했다.
나: “저기, 나 갑자기 출장이 생겼는데 어쩌지? 담당자 출장이라서 조금 늦을 것 같은데 조금 기다렸다가 같이 갈까?
그녀: “무슨 출장이 퇴근 무렵에 갑자기 생겨? 술 마시는 모임 아니야?”
나: “아니거든. 혹시 먼저 가고 싶음 가도 돼. 누구 역까지 태워다 달라고 할 사람 없어?”
그녀: “없거든. 지금 퇴근 시간이잖아. 비까지 오는데 우산도 없어.”
나: “나는 같이 갈 사람 있어서 차를 안 가지고 가도 되는데. 이럴 때 당신이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그녀: “또 그 소리야?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다른 것 거의 다 하는데 운전이라도 당신이 해야 하는 거 아냐?”
나: “그러게 진작 운전 연수 좀 받아놓지. 다른 엄마들은 다 운전하던데.”
그녀: “또 잔소리야? 어째 그 잔소리는 매번 그렇게 당당해? 내가 운전까지 잘해봐. 당신은 찬밥이야.”
출장을 오고 간 내내 마음이 불편해서 수십 번 전화를 했지만 결국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집에 와서 보니 오늘 입고 갔던 그녀 옷이 흠뻑 젖어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사과라도 하려고 했지만 방문은 잠겨 있었고, 결국은 그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빨래가 다 되었다고 세탁기가 노래를 부르기에 식탁을 지나 빨래를 가지러 가던 중 지난 어버이날에 딸이 사 온 카네이션과 맥주 캔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순간 아차하며 미안한 마음이 불쑥 찾아왔다.
그건 바로 철썩 같이 꽃구경을 가기로 한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주변의 변화에 자꾸 무신경해지는 것 같다.
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지만 벚꽃 한 번, 철쭉 한 번 제대로 살펴보고 예뻐해 주지도
못한 채 봄의 끝자락을 잡고 서있다.
오늘은 금요일. 꼭 불금을 하리라 결심했다.
오늘만큼은 꼭 나를 위해서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을 했고, 그도
그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운치 있게 우산을 쓰고 걷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나의 기운을 뺏어간 상담지도와 전화 상담으로 이미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한 줄기 희망! -그것은 바로 꽃구경- 만을 기다리며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마저 빼앗긴다면 오늘은 폐업을 하는 가게 주인처럼 정말 기분 최악일 것 같았다.
그러나 안 좋은 일은 몰아서 온다고 하였던가?
갑자기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직 퇴근은 하지 않았을 시간인데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그 촉은 맞아떨어졌다.
‘저기, 나 갑자기 출장이 생겼어.’ 전화기를 타고 전해지는 이 한 마디는 너무나 여리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함이 전해졌다.
하지만 오늘 나의 정신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비가 추적추적 많이도 내렸고, 기분은 엉망진창이었다.
여기에 운전을 못한다는 잔소리까지 들으니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를 쏟아내었다.
나: “또 잔소리야? 어째 그 잔소리는 매번 그렇게 당당해? 내가 운전까지 잘해봐. 당신은 찬밥이야.”
(전화를 뚝 끊고) “오늘은 정말 밥도 하기 싫고, 위로받고 싶었는데 어쩜 그렇게 마음을 몰라주냐."
전철역에서 내려 비를 맞으며 집까지 걸었다. 우산을 쓰거나 택시를 타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비와 함께 뒤섞여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십 통의 전화가 쉬지 않고 걸려왔다. 모두 그에게서 온 연락이지만 한 통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으면 자존심 상하게 펑펑 울 것만 같았다.
옷이 흠뻑 젖었지만 빨래를 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눅눅한 마음을 맥주 한 캔으로 달래었다. 빨간색. 아주 빨갛고 청초한 카네이션 한 송이가 애잔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