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행 계획 말로만 하지 마

진상에서 온 여자, 화상에서 온 남자

by 오 캡틴 마이 캡틴

진상에서 온 진상 같은 여자, 화상에서 온 화상 같은 남자의 리얼한 픽션‧논픽션 세상살이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 두 개의 관점!


여행 계획 말로만 하지 마(여행 계획서)


그 남자


내가 여행 계획 안 짠 것 때문에 화났어요?

안 짠 것이 아니라 자꾸 맘에 안 들어 하니까 기회를 준 거예요.

일단 내 말을 들어봐요.

왜 여행 계획을 안 짰냐 하면…

당신은 나를 일단 믿지를 않아요.

아니 내가 계획하는 것들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요.


연애 초기에는 내가 너무나 꼼꼼하게 계획적인 반면 당신은 반대로

그런 면을 싫어하며 여유를 즐기는 타입이었죠.

어떨 때는 밥 먹는 시간도 놓치고 여행을 하느라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냐며 여행이 힘들다고 당신은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고 하였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여백의 미를 남겨두며 천천히 즐기는 여행을 하고 싶은 반면

당신은 많은 계획들을 일정에 넣어두고 항상 내 덕에 이런 것들도 하는 것이라고

생색을 내며 끝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려고 하죠.


당신이 항상 계획을 세워오고 진행했으니 이제 나보고 하라고 하여 나름 일정을 짜고, 준비를 하지만 어김없이 당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기어코 본인이 새로이 계획을 다시 짜죠.

이러니 내가 여행 계획을 짜고 싶을까요?

어차피 원점으로 돌아가서 당신이 다시 할 바에는 내가 하는 것이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에서 계획을 짜지 않는 거라고요.

아니 보조의 역할을 항상 자처해서 하는 것이지요.


사실 모든 일에서 메인보다는 보조가 더 힘든 것 알고 있죠?

예를 들면 음식에서는 보조가 힘들게 재료들을 준비해야 하고, 방송에서도 보면 자질구레한 일들을 보조가 대부분 맡아서 처리하고 말이죠.

그래서 여행 계획을 안 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자로서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이랍니다.


생각해 보면 많은 여행의 시작과 아이디어는 내가 많이 내는 것 같네요.

먼저 생각하고, 정리해서 여행의 계획을 꺼내는 일이요.

무슨 여행이든 왜 내가 기안자가 되어서 항상 당신한테 결재를 받아야 하는 걸까요?

나도 편하게 여행을 짜고, 즐기고 싶어요.


그 여자


네, 정말 화가 나요.

매번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으며, 잔소리만 하기 때문이죠.

이봐요 그대, 나에게 기회를 준거라고요?

당신이 뭘 착각하고 있는지 내 말을 잘 들어봐요.


내가 당신을 믿지 않는다고요?

그래요. 당신을 믿지 않죠. 아니 믿지 않게 행동을 해요.

매번 주말이나 휴일에 어디를 가자고 말을 꺼내요.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당신의 계획을 따르지 않으면 TV를 못 보게 하거나

잔소리를 하며 따라다니거나 하루 종일 기분 나빠하죠.


그래서 정보를 찾고, 갈만한 곳들과 숙박 등을 알아보면 당신은 휴대폰을

보거나 개인적인 일을 하죠. 또는 바닥에 누워서 졸며 내가 묻는 의견에

말도 안 되는 잠꼬대나 하고 있죠.


훨씬 꼼꼼하게 준비해야 하는 해외여행 때는 가자고 말만 하고, 비행기부터

숙박, 교통, 식사까지 내가 찾고 준비를 하죠.

내가 너무 꼼꼼하다고요? 여유를 즐기는 타입에서 바뀌었다고요?


당신은 어디가 좋다더라, 어떠하다더라 말만 하고 비행기는 싸게 잡은 거냐

혹시 더 싸게 나온 곳은 없느냐, 대충 챙겨서 가면 되지 않느냐며

대부분 무책임하게 말하잖아요.

가서 꼭 해봐야 할 것들은 사람이 많다, 가봐야 제대로 못 즐긴다, 돈이 비싸다 등

일정도 짜지 않는 사람이 불평은 엄청 많아요.

일정을 짰다고 보면 숙소와 너무 멀거나 동선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러니 어떻게 내가 계획을 다시 짜지 않을 수 있겠어요? 좀 더 찾아보라고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나한테만 의지하고 거의 사용할 일 없거나 정작 사용하지도 못하는 외국어만 아이와 준비하고 있는데 화가 나지 않겠어요?

보조자의 역할을 한다고요? 남편이자 남자인데 정면에 서서 듬직하게 우리를 이끌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행 전날까지도 가방도 안 챙겨두고, 뭘 챙겨야 할지도 모르고 내가 다 챙겨줘야 하고. 보조자가 아니라 이건 뭐 거의 짐이지요.


여행의 시작은 항상 자기가 꺼낸다고요? 그렇게 무책임하게 준비 없이 말하려거든 차라리 편히 쉬는 것이 훨씬 값진 휴식 아닐까요?

나도 제발 편하게 여유롭게 여행을 가보고 싶네요. 항상 아이 두 명 챙기는 기분이 드는 것을 당신은 알까요?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만 하지 말고, 꼼꼼하게 준비 좀 해요!


추신: 여행 가서 식사할 시간 놓쳤을 때 편의점 가자는 말 좀 하지 마요!


#그 남자#그 여자#여행#보조자#잔소리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