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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청 Jun 25. 2021

[쓰담쓰談10]우는 것, 참는 것, 즐기는 것

아플 때 우는 것은 삼류이고, 아플 때 참는 것은 이류이며, 아픔을 즐기

“삶을 다시 리셋하고 싶을 때가 없으셨나요?”

TV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던진 질문에 패널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를 듣고 있으면서 리셋하고 싶은 그들의 아쉬움에 괜스레 동화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생각 한 번쯤은 절절히 하고 살기 때문일 겁니다. 살다 보면 내 삶의 일부 혹은 모든 것을 처음 상태로 돌려놓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잘못 결정된 사업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잘못된 만남을 바로 잡을 수 있을 텐데, 잘못된 투자를 되돌릴 수 있을 텐데. 더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라는 생각 말입니다.     


아플 때 우는 것     

최근 전자기기가 대중화되면서 리셋(reset)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리셋은 데이터 처리기구 즉,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미리 정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스마트 폰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구매한 상태로 초기화시키는 것입니다. 리셋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때문에 전자기기 대부분은 리셋버튼이나 리셋기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최근 이처럼 리셋이 익숙해진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을 부르는 리셋중후군(reset syndrome)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쉽고 간단하고 빠른 조작인 리셋버튼을 누르면 시스템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현재의 자기 형편이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이나 인간관계를 쉽게 다시 시작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리셋증후군'은 청소년들 사이에 참을성 없는 행동과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 위주의 행동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심지어 책임감 없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플 때 참는 것     

여기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고 싶었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일랜드계 호주인인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의 이주노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골프선수 제이슨 데이(27·호주)입니다. 그의 날들은 참혹했습니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그의 지원자인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이를 계기로 싸움꾼으로 청소년기를 시작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양성발작성 두위현훈증(BPPV)'이라는 병도 찾아왔습니다. 이 질환으로 인해 젊디젊은 그는 감각이 무디어져 몸이 보내는 위치 신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운동장애와 시야장애를 안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골프는 고사하고 일상의 불편을 감내해야 했던 것입니다. 2013년 11월에는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친척 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데이의 날들은 시련과 외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미국 미시건 호수로 저녁 일몰이 드리워졌습니다. 27살의 “양성발작성 두위현훈증”을 겪던 이 젊은이가 마지막 18번 홀에서 '챔피언 퍼트'를 하기 위해 섰습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습니다. 불과 15cm 앞에 우승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2개월 전 US오픈에서는 2라운드 경기 중 현기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그의 나이 여섯 살,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아버지 앨빈이 3번 우드를 잘라 처음으로 골프를 가르쳐 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방황하는 그를 잡아 준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싸움판에 뒹구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의 유산인 집을 팔아 전문적인 골프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스포츠 전문학교에 아들을 보냈습니다.     


데이는 이후 새벽 5시에 일어나 연습을 했고, 식사도 거르며 심지어는 저녁에도 골프 연습을 했습니다. 책을 살 돈이 없어 친구에게 타이거 우즈의 골프책을 빌려 공부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즈의 스코어를 적고 다니며 자신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2008년 무명의 데이는 “우즈를 무너뜨릴 수 있다”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2015년 8월 17일, 미국 위스콘신주 쾰러의 휘슬링 스트레이츠 골프장에서 벌어진 제97회 PGA 챔피언십, 마지막 챔피언 퍼트를 위해 서 있는 그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습니다.     


데이는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2개로 5언더파 67타를 쳤습니다. 최종합계 20언더파를 적어낸 데이는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더구나 4대 메이저대회를 통틀어 20언더파 우승은 데이가 처음이었습니다. 종전 메이저대회 최다 언더파 우승은 타이거 우즈가 2000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세운 19언더파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우즈를 무너뜨렸습니다.     


아픔을 즐기는 것     

리셋은 인생을 후회하며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초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데이는 잠시 방황했지만, 어머니가 내민 손을 잡고 그의 날들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이 하나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뒷골목을 전전했으면 오늘의 나는 없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아플 때 우는 것은 삼류이고, 아플 때 참는 것은 이류이며, 아픔을 즐기는 것이 일류인생"이라고 말했습니다. 데이는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날마다 인생을 즐겼습니다. 아쉽게 경기를 놓치면 다시 도전했습니다. 현기증에 쓰러지면서 또 일어나 도전했습니다. 실패하고 나면 그는 실수와 불운을 안타까워하며 리셋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부터 행동하는 방식까지 다 바꿨습니다. 리셋은 포기하거나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김현청 : 콘텐츠기획자, 스토리마케터, 브랜드저널리스트, 언론인, 국제구호개발가, 로푸드연구가, 오지여행가
서울리더스클럽회장, 블루에이지 회장

www.hyuncheong.x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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