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라는 것

왜 '무겁다'고 자랑하는 광고는 보기 힘들까?

by 현카피


세상의 상품들은 저마다의 장점을 자랑한다. 어느 것은 조용하다고 자랑하고, 어느 것은 우렁차다고 자랑한다. 어느 것은 크다고 또 어느 것은 작다고 자랑한다. 세상 모든 것이 빠르다고 자랑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세상엔 느리다고 자랑하는 상품들도 적지 않다. 흡수가 느리지만 그래서 오래 지속된다는 화장품이나, 느릴수록 건강에 좋다고 광고하는 슬로푸드 등이 그렇다. ‘고속’이라는 뜻을 가진 에스프레소 커피도 인기지만, 천천히 내리는 핸드 드립 커피도 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그밖에도, 단순하다고 자랑하는 제품과 복잡정교하다고 자랑하는 제품, 최신이라고 자랑하는 제품과 오래 되었다고 자랑하는 제품, 엄청 따뜻하다는 제품과 정말 시원하다는 제품들이 저마다의 장점을 뽐낸다.


세상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니, 어떤 특징이라도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다. ‘무겁다’고 자랑하는 상품이 있나? 몇 시간 고민하면 하나쯤 찾아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수십 년 동안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무겁다고 자랑하는 상품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왜일까? 왜 ‘무거움’은 장점이 되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숙명처럼 우리의 삶이 너무 ‘무겁기’ 때문 아닐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늘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천 년 전의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에나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마치 그것들은 삶의 중간 중간 끼워진 권내 부록 같은 것인 양,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힘들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리고 그 힘들다는 말을 ‘삶의 무게’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아아, 그러하니, 무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무거운 삶에 또 무언가 무게를 더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삶의 본질은 무거움인가 라고 새삼 고개를 주억이다 문득 예전에 썼던 광고 카피를 떠올린다.


히말라야 14좌를 무산소로 오른 故 김창호 대장의 생전, 그를 모델로 하는 어느 아웃도어 웨어의 광고를 의뢰받았을 때다. 제품의 장점은 ‘경량’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던 때에 맡은 일이었던 탓일까, 나는 오히려 ‘무거움’을 가지고 카피를 썼고, 내가 쓴 많은 카피 중 유독 이것을 자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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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높이가 아니라

무게다


삶이,

길이가 아니라

무게인 것처럼


해발 8,848미터를 무산소로 오르는 자에게

산은 얼마나 무거울까


두려움도

중력을 거스르는 고통도 무게가 되는 그 순간에

단 1그램의 헛된 무게도 더할 수 없다


그가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의 기록을 넘어설 때


OO의 경량 기술력은

산의 무게를 덜어내고 있었다




삶의 짐을 내려놓고 영면에 든 김창호 대장이 평화롭기를, 아주 잠깐이라도 나와 이웃들 그 고된 삶의 무게 또한 1그램쯤 덜어낼 수 있기를 소망하며 또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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