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누구도 속일 수 없다

초콜릿을 쥐고 있는 손에 대하여

by 현카피


사람을 채용할 때 뭘 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경영자도 아니고 채용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나는 매번 아주 쉽게 답한다. “얼마나 여기에서 이 일을 하고 싶은지를 보고 정해”


그럼 이어지는 질문은 뻔하다. 그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좀 무책임하게 들릴 걸 알지만, 나로서는 분명한 사실이니 일부러 다르게 대답할 수도 없다. “응, 그냥 보면 알아. 그런 건 속여지지 않거든”


오래전, 초콜릿 광고를 만들었다. 초콜릿의 ‘진한 맛’을 이야기해 달라는 광고주의 요청에, 나는 단박 내가 알고 있는 진한 것 중 ‘그리움’을 생각했다. 그리움에 사로잡힌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그보다 더 진한 무언가를 떠올리기 힘들었다.


스타 여자 연예인들을 모델로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초콜릿 광고에, 나는 유명하지 않은 일반 모델을 제안했다. 온전히 그리움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최종 완성된 광고 콘티엔 구체적인 줄거리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여자가 있다. 그녀는 시골 초등학교를 찾아왔다. 운동장을 바라보고, 낡은 시작종을 만지고, 바라보고, 거기에 초콜릿을 매달아두고 돌아간다. 광고는 ‘왜’라고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로 내레이션 한 줄- “그리움이 이렇게 진할 줄 몰랐습니다...”


그녀가 그리워한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는 이마다 다르게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보다는, 그녀가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럼, 그 ‘얼마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무엇을 통해 영상 속에서 드러낼 수 있을까?


내가 집중한 건 ‘손’이다.


그녀는 손에 초콜릿을 쥐고 있다. 초콜릿 광고이니 초콜릿을 들고 있는 게 지극히 당연하지만, 먹기 위해 손에 잡거나 들고 있는 일반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초콜릿을 ‘쥐고’ 있다. PD가 아닌 카피라이터인데도 나는 제작 전 미팅 때마다 감독에게 유독 이 컷에 대해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당부하고 거듭 당부했다. 이 컷의 연출이 이 광고를 좌우할 거라고 협박(?)했다. 촬영장에서도 이 컷의 클로즈업을 모니터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한 테이크만 더 찍자고 계속 참견하고, 심지어 카메라 옆으로 가 쥔 손의 형태와 잡은 위치, 각도를 시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 쥔 손의 모양, 들어간 힘의 정도, 미세한 떨림- 그런 것들이 그녀가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줄거리의 힘, 설명의 힘이 아니라, 그냥 그 모습의 힘으로, 광고를,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든 광고는 휘발한다. 아무리 히트한 광고도 순식간에 잊힌다. 2002년에 방영된 이 초콜릿 광고는 유명 연예인을 쓰지 않아서인지, 광고비를 아주 조금밖에 쓰지 않아서인지 시리즈의 다른 광고에 비해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나는 제작에 참여한 많은 광고 중 유독 이 광고를 아낀다. 특히나 주인공의 손을 클로즈업 한 그 한 컷을 자주 떠올리며 혼자 실없이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 그런 것들은 감춰지지 않는다. 대동맥으로 피를 펌핑하는 좌심실처럼, 온몸 모든 것들은 매 순간 그 감정을 뿜어낸다. 그 강렬한 발산을 어떻게 모를 수 있나. 어떤 면접관이 모를 수 있고, 어떤 연인이 모를 수 있나. 본질적으로, 우리는 누구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손으로, 눈으로, 표정과 몸짓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심지어 자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 걸고 있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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