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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카피 Mar 02. 2020

울림

탁구 라켓을 고르며

  얼마전 아내 것으로 탁구 라켓을 골라 사주고, 연이어 내 것도 하나 샀다. 둘 다 5겹 목판 블레이드다.


  블레이드(러버를 붙이는, 손잡이가 붙은 판 = 라켓)는 공을 강하게 튕겨낼수록 득점에 유리하기 때문에, 예전엔 목재로만 만들었지만 요즘은 나무에 카본류의 특수소재를 더해 만든다. 선수뿐 아니라 동호인들이 사용하는 블레이드들도 대부분 그런 제품이다. 같은 실력이라면 카본층이 추가된 라켓으로 칠 때 공이 더 빠르고 강해진다.  


  그걸 알면서 굳이 순수 목판 블레이드를 샀다. 나뿐 아니라 적잖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목판을 고집하고, 또 기초를 탄탄히 하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목판 블레이드로 연습하기도 하는데, 그 공통의 이유가 바로 '울림'이다.


  순수 목판 블레이드에 러버를 붙여 공을 치면, 특유의 '텅-' 하는 울림이 손에 느껴진다. 이과적 소양이 부족해 잘은 모르겠지만 이 울림이라는 게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힘의 손실'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울림은 공이 닿는 순간을 손이 정확하게 느끼게 하고, 공이 러버에서 튕기는 '반발'과 러버에 묻히는 '포용'의 비율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 낯간지럽게 말하자면, 목재 블레이드의 울림은 손과 공을 교감하게 해준다. 물론 그 댓가는 속도와 힘의 손실이다.



  말과 처신에 '강함' '단도직입적' 같은 것들을 점점 더 요구하고 칭송하는 세태다. 그런 말과 처신이 '이기게 하고' '효과적이고' '빠르고' '피곤하지 않다'고 이 세태는 우리를 가르친다. 협박하고 설득한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맞을 때가 많다. 그러나 분명 그 강하고 빠르고 단도직입적인 말과 처신에는 '울림'이 없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 너 무지엄청울트라 짱 좋아"라고 바로 말하는 게 분명 효과적일 수 있고, 싫은 사람에게 "나 너 싫어. 미안하지만, 좋아질 가능성이 1도 없어" 하는 게 빠르고 스트레스 안받는 강수일 수 있지만, 세상엔 천천히 정교하게 쌓아 만드는 말과 관계의 울림에 끌리는 사람들도 있고, 그 또한 우리들 본성의 틀림 없는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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