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일요일 오전.
오디오 기기들 위에 쌓인 먼지를 닦고
그 위 피규어에 쌓인 먼지를 털고
커피 머신을 닦고
아이 방 시계 전지를 갈아주는 김에 시계도 닦고
이렇게 닦고 고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에
고마워한다.
로저 데이비슨 트리오의 음반을 청소 마친 CDP에 걸어놓고
듣고 싶은 곡을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걸
고마워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의 반경이란
참으로 좁구나.
세상이란 그저 넓은 주변이 아니라
그 수많은 '나'들의 합이라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닦아낼 수도 꺼버릴 수도
심지어 무찌를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