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양이 입양기를 읽고 마음이 움직인데다, 그 고양이가 하필 우리집 마야마군과 같은 러시안블루라, 예전 마야마가 어렸을 때 쓴 글을 하나 옮겨와 본다. 마야마가 태어난지 세달째쯤의 글이다.
나는 '끌어안지' 않고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천성인 어리광 때문일지도 모른다. 늦은밤까지 세차를 하느라 다시 허리와 팔의 통증이 심해져서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또 잠을 설치면 긴 연휴 뒤의 출근을 감당하기 힘들다. 감았던 눈을 뜨고 마야마를 불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거실에 있는지, 드레스룸 한구석 쌓아놓은 옷들 위에 마련한 자기 아지트에서 먼저 잠들어 있는지, 요즘 한참 사랑해주고 계시는 따끈하게 데워진 무선공유기 위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좀 더 높은 톤으로 이름을 부르고, "냐아옹~" 소리를 냈다. 고요 속에서 신경을 귀에 집중하고 들어보아도 역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서 포기하고 누웠는데 순간 발치쯤에서 살짝 매트리스가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진다. 마야마다. 대체 언제 바로 옆까지 와있다가 침대 위로 점프한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계속 내 근처에 있었던 건지도.
누워서 숨을 고르고, 일부러 한참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자는 척을 해도 마야마는 발치께에서 더이상 위쪽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점점 커진다. 결국 자존심 싸움에서 먼저 백기를 드는 건 언제나 나다. 몸을 일으키고 마야마가 놀라지 않게 미리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을 건 후 말랑말랑한 배 아래로 두 손을 넣어 안아올렸다. 뺨에 뽀뽀를 해주며 계속 말을 걸다가 조심조심 베개 옆에 내려놓았다. 모로 누운 후 왼팔을 마야마 위로 둘러 얹으니 몇 초도 참아주지 않고 머리를 빼며 스윽 일어선 이 녀석 다시 내 발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그곳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는다. 아기고양이 때는 자기가 먼저 내 품에 파고들어 꼬옥 안겨 잤으면서, 조금 컸다고 벌써 내외라니- 흥, 나도 더 아쉬운 소리 안한다! 너 그냥 거기서 혼자 자! 사람한테 어리광 부리다가 상처받는 것도 번번이 한심한데 고양이에게까지 그럴소냐!
일이분쯤 지났을까, 연신 흥흥 거리며 누워 있는데 갑자기 오른발등이 따뜻해진다. 말랑말랑한 젤리를 따뜻하게 데웠다가 뽀송뽀송 말려 발에 올려놓은 느낌. 마야마가 앞발을 모아 내 발 위에 얹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는 올려놓은 발에 턱을 괴는 자세로 잠을 청한다. 나는 발을 움직이지도, 옆으로 다시 돌아눕지도 못하게 되었다. 겨우 발가락을 조심스레 꼼지락거려 보아도 이 따뜻하고 가녀린 생물은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질 뿐이다. 고양이가 몸을 맡겨올 땐, 뭐랄까 문자 그대로 그 순간 완벽하게 나를 신뢰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할 수 없지. 오늘밤은 이 자세로 자야겠구나 생각했다. 잠시 후, 얹어놓았던 앞발이 스르륵 내려갔다 싶더니 곧바로 발등 바깥쪽으로 묵직한 무게가 느껴진다. 마야마가 등으로 내 발을 꾸욱 밀어붙이며 고로롱 소리를 낸다. 픽- 웃음이 난다. 눈가가 발처럼 따끈해져 온다.
마야마는 우미노 치카의 만화 [허니와 클로버]에 나오는 남자아이의 이름이다. 극의 화자인 다케모토나, 빛나는 재능을 가진 여주인공 하구미가 아니라 키 껑충하고 조용한 마야마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좋아했다. 있는 힘껏 사랑하는 그를, 그리고 선택할 수 없는 쪽의 사랑에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그를. 마야마가 술에 취한 야마다를 업고 가는 장면에서는 한 번도 펑펑 울지 않은 적이 없다.
하나씩 중얼거릴 때마다 똑똑
좋아한다는 말들이
마야마의 등에 떨어져 물들어 갔다.
마야마, 네가 좋아...
응.
마야마, 네가 좋아...
응.
좋아.
응.
너무 좋아.
응...
러시안블루종의 고양이들에 대한 설명은 대개 비슷하다. 길고 날씬한 포린형의 체구, 따뜻하지만 의연한 성품, 굉장히 조용한 울음소리, 반려인에게 보여주는 특별한 애정... 어떤 블로거는 러시안블루에 대해 이렇게 썼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다정다감하기 때문에 애정을 표현했다가 무시당하면 상처받기도 한다. 실내 생활에 잘 적응하며 창가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기만 할 뿐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해 한다."
마야마는 새벽까지 내내 내 발에 몸을 기대고 자다 동틀 때쯤 사라졌다. 출근준비를 하며 양말을 신을 때까지 온기가 발에 남은 느낌이 들었다. 안고 싶을 때 마음대로 안을 수는 없지만, 원하는 만큼 내 품안에 가두어 놓을 수도 없지만, 언제나 나보다 조금 더 따뜻한 38.6도의, 이 아이가 한없는 신뢰의 방식으로 증명하는 애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