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과 고양이 누구 목소리가 더 클까
아내와 각자의 책상에 앉아 웹서핑을 하며 쉬려고 하는데, 부엌 쪽에서 무슨 말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야?” 서로 주고받다가, 곧 알아차린다. 얼마 전 새로 들인 압력밥솥이 내는 소리다. 방금 전 설거지를 하려고 내솥을 빼놓았더니 얘가 자동으로 “절전 모드를 시작합니다” 라고 낭랑하게 외친 것.
“아 쫑알쫑알 되게 시끄럽네, 하여간 말 많은 거 딱 질색이야” 거친 말 좀처럼 안 하는 아내가 갑자기 사뭇 날카롭게 내뱉어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보니, 아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도 얘네들이 말을 하지 않아서다. 동물이니 애초 사람과 말이 통할 리 없는 데다, 우리 집 고양이 마야마군은 특히나 조용하고, 가끔씩 내는 목소리도 아주 작다. 귓가에 소곤거리는 정도랄까. 우리는 고양이의 생각을 짐작할 뿐이고, 그 짐작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도리도 없다. 알 수 없으니 마음대로 추측할 수 있다. 마음 편한 대로 생각할 수 있다. ‘아아~ 얘가 지금, 내가 좋다고 말하고 있구나’ 식으로.
압력밥솥을 만든 이는 기계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수록 사람들이 더 편해하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게 맞고, 소수의 어떤 사람, 가끔의 어떤 상황에서만 예외일 거다-라고 생각하다,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그럴까?
자원봉사센터에서 일하는 아내는 사람들의 말에 자주 상처받는다. 타인뿐일까, 가족의 말, 친구의 말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병수발은 아내의 몸을 지치게도 하지만, 그 과정에 오가는 여러 말- 건강하실 때 같지 않은 어머니의 슬픈 말, 당신도 힘들어 툭 내뱉는 아버지의 무심한 말, 미처 다 알아주지 못하는 남편과 아이의 말도 그때마다 작은 상채기를 남길 것이다. 남보다 오히려 더 상처를 주는 친한 친구들의 말 또한 마찬가지다. 그걸 깨달아 버린 아내에게 '말'은 더이상 호의적이기만 한 무언가일 수 없는 게 아닐까?
나도 점점, 말이 적은 이가 좋다. 그저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더라도 애정과 신뢰, 공감을 전달해오는 상대. 그 공감은 눈빛이기도 하고, 표정이기도 하고, 작은 스킨십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스윽- 우리 다리에 제 머리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고양이들의 그것 같은.
그렇게 생각해보면, 정말 좋은 압력밥솥이란, 그때그때 목소리로 하나하나 보고해 오는 게 아니라,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묵묵히 제 일을 잘 하고 있겠구나 생각이 드는, 늘 소리보다 밥맛으로 존재와 본연을 증명하는 그런 밥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