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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덕 Dec 29. 2023

VIP의 비밀스러운 주문

누구에게나 세탁은 필요하다

어느 날 매장으로 전화가 온다.


Someone: Hello, Do you speak English?

me: yes, sure. what can I do for you?

Someone: Can you do laundry pick up & delivery service for us?

me : Oh, I am  sorry, I can't. The laundry service is done by yourself. Please visit to my shop. And please do your laundry yourself and enjoy your waiting time with tasty coffee.


이게 그동안의 전화응대 패턴이었다.


론드리프로젝트는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에 공간에서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갖거나 로컬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동네를 즐기는 것을 제안하는 비즈니스로 시작했다.

그러므로 론드리프로젝트로 고객이 와야만 의미 있는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탁과 건조의 시간을 대략 40분씩 총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그 시간 동안에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가져와 바쁜 일처리를 한다. 또는 오랜만에 동네에 놀러 온 친구와 함께 수다를 나누며 집이 아니지만 나만의 거실로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론드리프로젝트가 의도했던 대로 공간을 만끽하는 고객들도 있었지만, 기능 그대로 빨래서비스만 이용하는 고객들도 있었다.

론드리프로젝트를 창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대면으로 세탁을 해결해 주는 스타트업이 생기기도 했다. 많은 투자를 바탕으로 서울 근교에 대규모 세탁공장을 세워 서울의 각 지역에서 세탁물을 수거하고 하루 또는 이틀 만에 배송하는 편리한 서비스로 코로나 이후에 더욱 성장하는 듯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동네 세탁소 폐업은 증가했고, 빨래방들은 조금씩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론드리프로젝트도 공간을 넘어서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지만 처음 시작했던 그 공간이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을 지키고 코로나가 끝난 이후로 결정을 미루게 되었다.

팬데믹을 겪고 무인빨래방의 증가와 세탁스타트업의 분전으로 이전보다 훨씬 줄어든 고객들이 줄어들기도 했다. 2년간의 팬데믹의 어려운 시간이 지나가고, 2022년 봄이 되자마자 많은 규제가 풀리고 슬슬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고 만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어가면서 슬슬 여행객도 보이고, 해방촌에 활기가 찾아왔다. 세탁손님도 매출을 일부 차지하지만 고민세탁(카페경험)을 위해 방문하는 고객들의 매출도 상당했기에 점차 회복해 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해 10월 안타까운 이태원 참사로 다시 해방촌은 다시 팬데믹 시절만큼 방문객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어쩌면 팬데믹의 기간보다 더 오래 영향받고 침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시도를 해야 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Hotel Laundry by Laundryproject

론드리프로젝트가 하는 호텔런드리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영어주문 웹페이지를 빠르게 만들어 포스팅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실제 하나둘씩 주문이 들어오게 되었다. 서울 호텔들에서 머무는 고객들이 주문을 했다. 새롭게 시작한 서비스인 만큼 호텔로 직접 찾아가 고객들로부터 픽업하고 서비스에 대한 간단한 질문 그리고 세탁이 끝나고 난 뒤 잘 포장하여 호텔서비스에 걸맞게 전달했다.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이 좋을 때처럼 신나는 게 더 있을까.


중동에서 온 의문의 전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전혀 생각지 못한 손님에게 전화가 왔다.

발신지는 UAE 두바이로 찍혔다.

인도식 억양의 영어를 사용하는 상대방은 런드리픽업&딜리버리서비스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픽업장소는 호텔이 아닌 인천공항이었다. 자기들의 VIP가 Private Jet을 타고 한국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갈 예정이다. 그 Private Jet에서 나오는 세탁물들을 인천공항에서 직접 픽업하고 이틀이내에 세탁해서 배달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천공항까지는 너무 멀었다. 열심히 달려도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게 또 새로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락했다. 픽업을 위해서는 나에게 세탁물을 전달해 줄 담당자 연락처, 픽업 및 배달 시간, 픽업 및 배달장소, 수량 등 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위 내용을 문의하니 상대측에서는 VIP의 방문일정 도착시간만 알려줄 수 있다. 모든 게 아직 미정이다. 

도착시간은 00월 00일 새벽 2시 10분.


더 상황이 복잡해졌다.

그 새벽에 인천까지 누구를 만나서 건네받아야 하며, 수량이 얼마나 될까.

내가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거라면 수속은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여하튼 멀리 서비스하는 만큼 넉넉한 가격으로 책정해서 리스트를 작성해서 보내줬다.

일단 VIP의 일정과 세탁물의 계획 등이 정해지면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연락을 기다리며 나의 일을 계속해 나갔다.

그 시기 각종 미디어와 뉴스로 도배된 인물이 있었다.

.

그 인물은 바로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 일명 미스터 에브리띵!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게티이미지

그의 재산가치. 그가 사우디의 미래를 위해 진행하고자 하는 사업 등

그가 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고, 어느 호텔에 머물기로 해서 통째로 호텔을 몇 주가 빌렸다는 소식 등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21109/116394558/1

그를 맞이하기 위한 대통령과 더불어 국내 기업들 총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든 생각으로 궁금해졌다.

그는 당연히 Private Jet을 타고 올 텐데.

설마...

그 두바이에서 연락 온 그 VIP가 빈살만?

전화로 그 VIP가 도착한다고 한 시각과 뉴스에서 빈살만이 한국에 도착한다고 얘기한 시간

새벽 2시 10분. 동일했다.

.

사우디 왕세자 빈살만의 세탁물을 하게 되는 건가?

정말 재미난 경험이다.

그래! 미스터에브리띵도 옷을 한번 입고 버리지는 않겠지.

그에게도 세탁은 필요하지.

빈살만 세탁과 위 사진은 rich 만 빼고는 관계없음

세탁의 역사는 인류의 문명과 그 흐름을 함께한다. 인간이 최초로 옷을 입으면서 세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5000년경에는 천연 탄산소다를 비누 대신 사용했고, 기원전 2500년경에는 비누와 유사한 세제로 세탁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탁이라는 행위는 꽤나 인간에게 평등한 편이다. 특히 론드리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호텔에서 머무는 외국대기업 출장객부터 해방촌에 사는 대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스터에브리띵도 똑같은 서비스를 받는다.


Gated Community의 가속화, 도시커뮤니티의 접점

론드리프로젝트가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이 있다. 새롭게 개발된 아파트 주거단지다. 일명 Gated Community. 아파트 자체는 문제가 안되지만 아파트 안전을 위해 만든 물리적, 심리적 경계를 만드는 담장들이 주변과 단절을 만들고 있다. 

https://youtu.be/CCH98_D759k?si=BLXDv_BPx5E-E6l0

놀이터라는 공간은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놀면서 어울릴 수 있는 장소다. 이런 기사와 뉴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어렸을 적을 추억하게 되었다. 아파트로 새롭게 이사와 어색한 동네에서 동네친구 없이 서먹서먹한 그때, 자연스레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동네 친구들과 한 시간 뛰어놀다 보면 다음날도 만나고, 그다음 날도 만날 기약을 하면 헤어지게 된다. 그렇게 친한 동네친구가 만들어진다. 


익스클루시브 런드리서비스

이렇게 새롭게 지어지는 아파트단지에도 다양한 커뮤니티시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공용런드리(최근 추세는 런드리카페) 시설이다. 단지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으며 중심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단지 주민만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기에 외부에게는 가장 먼 곳이다. 론드리프로젝트는 다양한 사람들의 접점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아파트단지에서 원하는 건 익스클루시브 런드리카페서비스였다. 아파트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런드리카페. 그건 론드리프로젝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해방촌에서 처음 론드리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재밌었던 점은 이태원, 해방촌에 사는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이용하는 가게들이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국인들 중에서도 커뮤니티마다 즐겨가는 아지트 같은 가게가 나눠져 있다. 특정 외국인 커뮤니티가 이용하는 pub,  bar, club이 다양하게 나눠져 있고, 한국인들만 가는 가게도 나눠져 있다. 이태원, 해방촌 한 동네 같지만 그들만의 경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론드리프로젝트에는 모두가 빨래를 하기 위해 모이게 되었다. 어쩌면 이태원, 해방촌 주민들과 더불어 외국인 여행객까지 품을 수 있는 다양한 컬처의 용광로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2/09/10/NPLML47L6RABFDB7YGZRG2DO3I/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곳, 그곳에서 창의성이 나온다.   

아쉽게도 기다리던 빈살만의 최종 세탁주문은 들어오지 않았다. 빈살만의 론드리프로젝트는 준비성 높은 비서가 계획한 planB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탁비즈니스 시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세탁이라는 콘텐츠가 우리 생활에 아주 가까이 있어 어떤 사람에게라도 다가갈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연스럽게 만나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세탁소카페, 론드리프로젝트 



로컬을 알고 가까워지기 위한 가장 첫 포인트, 론드리프로젝트  

지금은 이태원 해방촌, 홍대 서교동, 강서구 등촌역에 있다. 앞으로 이 생활밀착형 용광로가 부산, 제주, 발리, 치앙마이, 싱가포르, 방콕, 파리, 암스테르담 등 세계 각지 도시에 만들어지고 로컬의 접점의 포인트가 되기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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