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 시선은 언제나 결핍을 향한다.

해방촌의 테라스와 구의 이스트폴 몰(Mall)의 선호자리

by 이현덕

공간에서 시선은 언제나 결핍을 향한다.

2015년 해방촌의 좁은 언덕길에 '론드리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로, 나는 줄곧 손님들의 ‘시선’을 관찰해 왔다.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손님이 어느 자리에 먼저 앉느냐는 것은, 그 공간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가장 정직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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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발견한 생명력

해방촌과 망원동(서교동) 시절, 우리 매장의 ‘명당’은 단연 테라스와 창가 자리였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손님들은 길과 가장 가까운 곳 부터 자리를 채워갔다.

그들에게 길은 단순히 통행로가 아니었다. 수십 년 된 노포와 세련된 카페가 섞여 있고, 상시 햇볕이 들고, 계절마다 담장 너머의 색이 변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였다. 그 길 위에서 벌어지는 불확실한 우연들이 곧 흥미로운 콘텐츠였기에, 사람들은 기꺼이 '길멍'을 즐기며 도시의 생명력에 자신의 일상을 기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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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테라스.jpg 신흥시장 테라스

몰링(Malling) 시대, 안으로 굽는 시선

최근 구의동 이스트폴점에 매장을 열며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의 흐름을 목격하고 있다. 이곳은 거대한 복합쇼핑몰의 세계다. 흥미롭게도 이곳의 손님들은 외부와 맞닿은 창가보다, 몰 내부의 활동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안쪽 자리를 더 선호한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왜 사람들은 탁 트인 외부를 두고 안으로 고개를 돌릴까?

추측 끝에 얻은 나의 답은 ‘풍경의 밀도’가 아닐까 한다.

20250606_191343.jpg 구의 이스트폴 테라로사


대규모 개발지에 들어선 몰 주변은 대개 이제 막 직선으로 닦인 매끈한 아스팔트와 공사 중인 가림막, 혹은 아직 서사가 쌓이지 않은 무미건조한 건물들이 지배한다. 관계의 밀도가 낮은 외부의 풍경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휑한 도로를 내다보는 것은 휴식의 시간에 고독감을 자극할 뿐이다.


반면, 잘 정돈된 조경과 세련된 조명, 그리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몰 안은 완벽하게 설계된 하나의 '소우주'다. 외부 길에서 찾을 수 없는 흥미로운 볼거리와 안온함이 그곳에 밀집되어 있다. 결국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더 밀도 높은 콘텐츠가 흐르는 ‘안쪽의 길’을 선택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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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부재한 곳에 풍경을 만드는 일

시선은 언제나 결핍을 향한다. 결핍된 서사를 채워주는 쪽으로 사람들의 몸은 기운다.

해방촌에서는 안쪽의 손님을 밖의 길과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했다면, 새로운 도시의 몰 안에서는 이 인위적인 세계를 어떻게 더 인간적인 결로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무미건조한 신도시의 풍경 속에 론드리프로젝트가 던져진 이유는 명확하다.

기계적인 도시 구조 안에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커피 향이라는 ‘사람 사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 풍경이 부재한 곳에 새로운 풍경을 심는 것. 그것이 론드리프로젝트가 다음 10년을 준비하며 마주한 새로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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