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기 땅콩 들었어요? 갑자기 막 가려워요. 얼른 약 주세요.
아홉 살 아이가 저녁을 먹다 멈칫거렸다. 아무래도 땅콩이 든 음식을 먹은 것 같다며 약을 달라는 것이었다. 이날 저녁 메뉴는 시판제품인 인도식 닭고기 카레와 플레인 난, 요구르트였다. 며칠 전부터 이걸 먹고 싶다고 했는데 직접 만들 줄 몰라 시판제품을 사뒀다.
그런데 성분표를 제대로 읽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땅콩이 들어있을 거라 생각조차 못했다. 하지만 딱 한 입을 먹었을 뿐인 아이의 얼굴이 피부 발진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덜컥, 겁이 났다.
미리 응급약을 준비해 둔 덕분에 곧바로 약을 먹일 수 있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기 전에 잔뜩 준비해 뒀던 액상형 알레르기 치료약을 꺼내면서도 온 신경이 아이에게 가 있었다. 괜찮겠지? 금방 가라앉겠지? 조바심을 내며 약을 먹이고 지켜봤다. 아이는 눈까지 충혈되었고, 기운이 없는지 누워있고 싶어 했다.
엄마, 괜찮을 거예요.
근데 너무 졸려요. 좀 누울래요.
아이가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려 들었다. 엄마의 얼굴이 겁에 질려 있으니 아이도 불안했던 것일까. 아이는 졸리다고 했다.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게 하고, 침대에 눕힌 뒤 조명을 어둡게 해 줬다. 저녁을 먹다 말았으니 다시 일어나겠지 했지만, 아이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약 성분 때문인지 금방 잠에 빠져든 아이를 보며 착잡해졌다. 나 때문이다. 모두 내 잘못이다. 나는 엄마 자격도 없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부주의할 수 있단 말인가. 끝없이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순간 이웃집 엄마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왜 그랬을까 대신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자고 말이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다 보면 끝없이 자책만 하느라 시간이 다 가버릴 수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리하는 게 더 좋다는 말이다. 그랬다. 아이 육아 문제에서만큼은 왜? 보다는 어떻게? 가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생각이 많고, 자학이 심한 나 같은 엄마에게는 말이다.
아이가 잠든 사이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한다.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는 게 내 잘못은 아니다. 당연히 아이 잘못도 아니다. 앞으로 조심 또 조심하면 될 일이다. 뭘 먹일 때는 성분표를 꼼꼼하게 두 번씩 읽자.
아이는 모든 견과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니 더 조심하자. 과자나 빵, 아이스크림에도 땅콩이나 헤이즐넛 성분이 들어가 있을 때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씨앗 호떡이나 연잎밥도 아이 앞에서는 먹을 수 없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먹거리에 신경 쓰겠다. 그래도 밀가루나 우유, 계란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없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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