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제발 '좋은 것'과 '비싼 것'을 혼동하지 말자! 자신의 '좋은 것'이 명확하지 않으니 '비싼 것'만 찾는 거다.
- 김정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중에서
김정운 교수의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단순 명료한 문장이었다.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너무 쉬워서 잠시 멈춰 생각했다.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랜 염원이지 않나. 당장이라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왜 좋은 삶을 살기 어려워하는 것일까.
지난 8월부터 아홉 살 둘째 아이와 강원도 인제로 와서 살고 있다. 나 역시 좋은 삶을 살아보겠다며 모험을 시작한 셈이다. 도시에서의 삶은 '좋은 삶'이 아니었던가. 시골에서 살면서 100% 좋은 삶을 살고 있나 되물어봤다. 여전히 나는 답을 찾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가족(남편, 큰 아이)과 떨어져 지내는 불편함과 외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골살이를 지속한다면 '좋은 삶'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김 교수의 말처럼 나에게 '좋은 것'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가.
깊어가는 가을을 잘 느끼려면 설악산으로 가야 한다. 10월의 마지막주 설악산 단풍은 무르익을 대로 익어 사람들을 부른다. 1년 전 가을에는 단풍을 보러 어딘가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출퇴근길 단풍이 물든 도심의 풍경을 잠시 보면서 탄식했다. '가을이 이렇게 가는구나' 그뿐이었다. 사실 가을 단풍이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 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러니 지금의 시골 살이는 내게 '참 좋은 삶'이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가을 하늘을 보느라 고개를 들어 올린다. 단풍이 예뻐 걸음을 멈춘다. 나무에 손을 대고 한참이나 서 있을 때도 있다. 예전 같았으면 시간 낭비라 생각했을 순간들이 매일 이어진다. 빌딩숲 대신 진짜 숲을 볼 수 있는 건 내게 행운이 아닐까.
시골에 살면서 텀블러와 에코백이 필수품이 돼버렸다. 생수를 사 먹는 일이 없어졌다. 어딜 가나 정수기는 있지만 종이컵이 없는 경우도 많으니 텀블러가 있으면 세상 편하다. 작고 멋스러운 가죽가방은 불편하다. 뭐가 좀 묻어도 마음 편하고, 이것저것 잔뜩 넣을 수 있는 에코백이 최고다. 이 두 가지를 매일 갖고 다니며 깨달았다. 도시에서 나는 정말 많이 사고 버렸다. 잘 사기도 했지만, 잘 버리기도 했다. 사고 버리는 일에 죄책감을 느낄 새가 없었다. 다들 그러니 나도 그리 사는 게 당연하다 여겼다. (부끄럽게도) 내게서 나오는 쓰레기가 이렇게나 많은 줄 왜 몰랐을까. 시골 살이는 잠들었던 나를 깨운다. 당연히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과연 비싼 것이 좋은 것인가. 좋은 것이 값진 것인가.
시골에 살면서 내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련다. 또 무엇이 싫은지, 내게 어울리지 않는지도 구분해내고 싶다. 나는 누구보다 '좋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니까. 오늘도 텀블러에 따뜻한 차 한잔을 담고, 에코백에 잡동사니를 넣은 채 길을 나선다. 짧디 짧은 이 가을을 더 온전히 느끼고 싶어 오늘도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좋은 삶을 꿈꾸는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