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기서 사진 찍어주세요.
마음에 드는 글자 앞에 서볼래?
날이 따뜻했던 주말 오후, 아이와 도서관에서 놀다가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합강정 휴게소가 보였고, 충동적으로 차를 멈춰 세웠다.
한편에 조형물이 보였고, 아이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나는 지금 인제에 있다' (I AM NOW IN-JE)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맞아, 나는 지금 인제에 살고 있지. 도시가 아닌 이곳에, 우리 집을 떠나 '인제집'에서 살고 있지!
아이에게 마음에 드는 글자 앞에 서보라고 했다.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NOW의 O안에 얼굴을 쏙 내밀고 웃는다. 아홉 살 짜리도 본능적으로 이끌린 것일까. NOW. 지금, 이 순간이라는 글자에 말이다.
1년 전에는 아이와 단둘이 이곳에서 살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인제살이 120일 차를 넘어가고 있는 지금, 어떻게 늘 좋을 수만 있으랴. 웃는 날도 있지만, 슬픈 날도 있다. 아이 덕분에 행복하다가도, 또 아이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다. 인제의 웅장한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다가도, 정체되어 있는 듯한 내 삶에 온갖 의문과 불안감이 뒤범벅되는 것도 사실이다. 크고 작은 현실적인 문제들도 겪어나가면서 시행착오를 겪는다. 경험이 재산이라더니, 나는 지금 배부르게 경험을 쌓고 있나 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아침 아이에게 뭘 해먹일까?'를 생각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직전 고민에 빠진다. '오늘 저녁에는 뭐 해 먹지?'. 매일 밤,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내일 아침 메뉴는 뭐가 좋을까?' 어찌 보면 단순하고도 쉬울 수 있는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매 순간이 도전의 연속이다.
우선, 아이와 원룸형태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원룸의 특성상 아이와 떨어져 있기가 쉽지 않다. 밖으로 나가버리면 되지만, 인제의 겨울은 혹독하다.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멀리 다녀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잠시 집 앞마당을 걸을 수야 있겠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가져야 하는 편인데, 그 부분이 힘들어지고 있다. 이곳의 겨울은 길고도 어두울 텐데 말이다. 잠시라도 혼자 있게 엄마를 내버려 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일하지 않고, 쉬고 있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도 내게는 도전이자 과제이다. 그렇게 쉬고 싶어 했으면서도 막상 쉬는 기간이 길어지니 불안해진다. 노는 게 제일 좋아,라고 노래하기에는 내가 때 묻은 속세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얼른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을 정도다. 내년 이 맘때쯤에는 미친 듯이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안다.
도시에서 살 때보다 오히려 운동량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마음이 불편하다. 의식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오히려 덜 걷고, 덜 움직이다. 항상 차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핑계라면 핑계일 것이다. 보통은 걷거나 지하철을 탈 거리를, 이곳 인제에서는 무조건 차로 이동해야 한다. 틈틈이 홈트를 챙겨하고,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인 것 같다. 몸이 무겁고 둔해진다. 아무리 겨울이 깊어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크고 작은 도전 과제 앞에 무뎌질 때, 인제를 떠날 수 있으려나. 오히려 인제를 떠나기가 더 어려워질까. 벌써부터 인제살이의 '끝'을 생각하는 나라니.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을 테다. 어딜 가나 '우리는 인제에서 살고 있다'라고 외치던 내가 조금은, 아니 어쩌면 많이 지쳐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