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이제 그만 돌아와라. 애는 신났는데 너는 고생이잖니.
모처럼 친정에 갔다. 큰 딸이 40대 중반이 되었어도 노모의 걱정은 멈출 줄 모른다. 아무리 안심시켜 드리려 애써도 소용이 없다. 믿음직스러웠던 큰 딸이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쉬고, 가장 못하는 일이던 살림과 육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도 자식을 둘이나 낳아 기르고 있으니까.
엄마는 영 못마땅한 게다. 큰 딸이 화장도 하지 않고, 옷도 차려입지 않고, (엄마의 시선으로는) 애 밥이나 해먹이면서 이웃집 엄마들과 돌아다니는 게 불편하신 것 같다. 언제나 일하고, 언제나 공부하려는 큰 딸의 모습이 더 좋으셨던 걸까?
가능하면 자주 안부 연락을 해서, '나는 무사합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나는 고생하고 있지 않습니다.'를 외친다. 그래도 엄마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또 둘러대고 있네, 쯧쯧 혀를 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이제는 자식 걱정에서 자유로워져 엄마만의 인생을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여전히 인제 시골집 마당에는 눈이 녹지 않는다. 만년설이 되려나? 봄이 되면 녹으려나? 도시에 살 때도 눈이 내리면 걱정부터 했다. 흰 눈을 보면 30초 감탄하고 출근길, 퇴근길 도로 상황이 걱정되어 심난해졌다. 인제에서 살면서 평생 구경할 눈을 다 보고 있는 것 같다. 제발 쌓이고 얼어붙은 눈 좀 빨리 녹았으면 하던 찰나, 아이가 이웃 친구들과 함께 눈사람이 아닌 '얼굴'을 만들었다. 뺨이 빨갛게 트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엄마, 이거 우리들 얼굴이에요! 잘 만들었죠?
학원 셔틀차를 타는 대신, 아이들과 눈밭을 뒹굴며 노는 아이의 얼굴은 맑고 담담하며 평온하다. 왜 나는 저렇게 미소 짓지 못하고 있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시골생활은 쉽지 않다. 그동안 갖고 있었던 환상도 하나씩 깨고 있는 중인데,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쌓아간다. 눈에서 뒹굴다 집에 들어오면 엄마의 손길은 바빠진다. 옷과 신발이 다 젖어 물이 뚝뚝 바닥에 흘러도 아이는 깔깔대고, 엄마는 심난하다. 친정엄마의 말처럼 나는 사서 고생하고 있는 중인 걸까?
하지만 아이가 만들어놓은 눈 '얼굴' 덕분에 마음을 다잡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100세 시대에 나는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할 테니 이번 고생은 기꺼운 마음으로 해보겠다. 불편한 게 많은 시골살이에도 낭만과 여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