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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May 27. 2024

아이가 개에 물렸다


지난 금요일 아침, 큰 아이가 등굣길에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가 둘인 엄마에게 가장 무서운 전화는 전화 오지 않아야 할 때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다. 갑자기 학교에서 전화가 올 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이른 아침 등교시간에 아이가 전화를 걸어올 때도 겁이 난다. 이 날도 순간 멈칫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엄마, 저 개에 물렸는데 개 주인이 도망갔어요.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이에게 괜찮냐고 묻는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욕이 나올 뻔했다. 분명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 학생인 것도 알았을 텐데, 아이를 두고 내빼다니 괘씸하고 화가 났다. 


최선을 다해 침착함을 보여야 했다. 나는 엄마이니까. 아이는 너무 놀라고 아팠지만, 무엇보다 화가 났다고 했다. 열다섯 살 아이에게 '못난 어른'의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분명 한심하고 나쁜 어른도 많다는 사실을 늦게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뭘 호들갑이야, 얘한테 물린 다른 사람들도 멀쩡했는데...

도망간 견주는 연락처를 달라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상습범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개에 물렸다면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게 먼저다. 아이는 나쁜 어른의 모습에 실망했고, 분노했다. 그 개는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주 물었던 모양이다. 그때마다 그 견주는 무심하게 도망갔을 것이다. 별일 없을 거라면서 말이다. 


일단,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물린 자국을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개 상태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엔 대부분 집에서 개를 키우니 우려할 만한 병에 걸릴 위험은 낮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것이다. 예민한 아이는 그 말에 더 겁을 냈다. 상처가 덧나면 죽을 수도 있냐며 불안에 떨었다. 절대 아니라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아 두려웠다. 


출처 : https://www.pexels.com/

병원에서 항생제를 진단받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일단, 현장 사진을 찍고 아이에게 정황을 묻고 기록했다. 그리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다행히 주변에 CCTV가 있었다. 신고했더니 근처 지구대에서 5분 만에 달려왔다. 경찰에 신고한 것만으로도 아이는 얼굴이 편안해졌다. 진술서를 받아 든 내게 경찰은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어머니, 아이가 놀랐겠지만 직접 진술서를 쓸 수 있을까요? 


아이는 평생 처음으로 경찰서에 제출할 진술서를 썼다. 사건이 일어난 그 현장에서 떨리는 손으로 꾹꾹 적어 내려 가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할 말을 쓰라는 비고란에 이렇게 적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 와중에도 아이가 기특했다. 


견주의 무책임함에 화가 납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반드시 처벌해 주세요. 


아이가 바라는 것은, 견주의 진정성 있는 사과 그것뿐이다. 하루빨리 아이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어른이라면 응당 그런 순간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 생각보다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배웠기를, 엄마로서 바란다. 


아들아, 엄마도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제대로 책임지는 법을 함께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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