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삶이란 원망하지 않는 삶이다. 친구, 지인, 남편, 시어른이 문제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넋두리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볼 건 봐야 하지만 지나갈 건 지나가야 한다. 특히 자녀에게 하소연을 일삼는 엄마가 되지는 말자. - 김선희, <다정함이 인격이다> 중에서
월요일 새벽, 책 읽기로 하루를 시작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숙한 삶이란, 원망하지 않는 삶이라니. 요즘 나는 아무에게나 하소연을 하고 있지 않았나 뜨끔해졌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글쓰기로도 하소연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출퇴근을 함께 하는 남편이 최대 피해자다. 아침저녁으로 나의 하소연을 듣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의 넋두리는 생산적이지도 않고, 희망이 보이거나 유쾌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성숙한 삶에 대해 남편과 대화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다음 문장에서 멈춰 서고야 말았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삶의 키워드가 무엇인지 이 한 문단에 나와 있었다.
언제 경청해야 할지, 언제 멈춰야 할지, 언제 조용히 있어야 할지 그리고 언제 말해야 할지를 아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모임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1/n인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성숙이다. 아무리 내 사연이 기구하고 할 말이 많아도 만나는 모든 이에게 매번 내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은 분별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타인은 당신의 관객이 아니다. 나와 함께 있는 이가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내 개인적인 부분을 말하지 않는 자제력, 상대가 부담을 느낄 만한 속이야기를 하지 않는 절제력이 성숙이다. 성숙한 어른은 넋두리와 하소연으로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능하다. - 김선희, <다정함이 인격이다> 중에서
지금의 나는 성숙한 어른이 아닌 게 분명하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응당 성숙한 삶을 살아내야 맞다. 분별력, 자제력, 절제력 그 어느 것 하나 내게 충분치 않다. 나는 매일 품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의 끝이 치닫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품위를 잃지 않으려면 얼마나 애써야 하는 것인지 새삼 느끼면서 막막해졌다. 나는 누구를 원망하고 있을까. 무엇을 원망하느라 나의 품위는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일까.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참자기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의 고유성과 자발성, 진면목이 발현되기 위해선 자신을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업은 타인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타인이 필요하다. - 김선희, <다정함이 인격이다> 중에서
어젯밤 먹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덕분에 감정은 무뎌지고, 정신은 맑지 못하다. 그런데도 나는 성숙한 삶, 품위 있는 삶을 꿈꾼다. 다시 시작된 나의 밥벌이로 토마토처럼 붉게 익어가듯 성숙해질 수 있을까.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자니 아직도 풋내 나는 토마토인 것 같아 서글퍼진다. 올봄, 나는 나답게, 참으로 성숙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