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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울에서 꽃이 피면 좋겠다

by 글쓰는 워킹맘


나의 우울의

연못 깊은 곳에서

제비꽃 핀다

わが鬱(うつ)の淵(ふち)の深(ふか)さに菫咲(すみれさ)く

- 하이쿠 시인, 바바 슌키치


꽃을 피우기 위해 무엇 무엇이 필요할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당연히 꽃피는 거라 믿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나오는 것처럼, 봄이 되면 꽃이 피어나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 짧은 시, 하이쿠에서 알아버렸다. 겨울의 끝, 봄의 시작에서 꽃이 피어날 때 고독과 불안과 떨림이 꼭 필요하다는 것. 어둡고 쓰디쓴 시간이 지나야 어떤 꽃이든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슬픔과 우울의 순간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긴 겨울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pexels-pixabay-54319.jpg 출처 : https://www.pexels.com
마음이 밝고 편안하면 글이 안 써져.
좀 우울하고 생각이 많아지면 글이 쓰고 싶어 지더라.


우리 안에서 꽃이 피어나려면 반대로 어둡고 깊은 슬픔과 우울감이 필요한 게 확실하다. 그저 내 마음 흔들릴 일 없이 고요하기만 하면 나의 시선은 밖을 향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우울하면 더 깊은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니 우울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울해지고, 기분이 바닥을 칠 때면 무릎을 치며 반길 일이다. 아, 글을 쓸 때가 왔다! 내 안의 꽃을 활짝 피울 때가 왔다!


노란 개나리꽃과 흰 벚꽃이 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날이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만개할 것만 같다. 이 좋은 봄날,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다가도 우울해지면 잠시 멈추련다. 어떤 글이든 좋으니 끄적대보겠다. 글이 쓰고 싶어지는 그 마음 한 자락이 소중할 테니까. 어서, 나의 우울에서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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