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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을 보며 서글퍼졌다

by 글쓰는 워킹맘
엄마, 꽃 택배가 와 있어요. 엄마가 주문하신 거예요?


아직 퇴근 전인데 큰 아이가 전화로 물었다. 긴 상자에 꽃이라 적혀있는데, 엄마가 주문한 게 맞냐고 했다. 맞다고 했더니 아이는 의외라고 했다. 원래 엄마들은 꽃을 돈 주고 사지 않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런, 아이에게 나는 그런 '엄마'로 보인 걸까.


갑자기 꽃이 좋아진다. 나이 탓일 수도 있고, 우울증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마냥 설레지도 않는다. 활짝 피어난 꽃을 보며 서글퍼진다. 이 꽃도 이렇게 예쁘게 피어나는데, 나는 언제쯤 피어날까 싶어서다. 생각이 너무 과한 것 같다. 그래도 서글프다. 이렇게 좋은 봄날, 나는 왜 꽃을 보며 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pexels-pixabay-68507.jpg 출처 : https://www.pexels.com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봄꽃을 보다 이렇게나 서글퍼진 이유를 찾다 정호승 시인의 시 '꽃을 보려면'을 읽었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기다리고,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 참지 못하고 성급히 굴다가는 꽃을 보기 어렵다.


어쩌면 나는 인내심이 기다려야 할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해 꽃이 다 피기도 전에 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명이 요동치는 봄의 기운 앞에 나만 겨울인 것 같아 도망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봄꽃 앞에서도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조금은 더 밝고 따뜻한 눈으로 봄꽃을 바라보고 싶다. 봄꽃이 피고, 지는 순간을 그저 감사히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허송세월하지 않고 싶다. 봄은 곧 끝나고, 무더운 여름이 오면 지금의 이 순간을 몹시도 그리워할 테니 말이다.


한 계절이 지나가고, 또 새로운 계절이 오면 나의 우울증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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