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던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 이유가 알고 싶다
Class 2 : 고양이털, 오리나무
Class 3 : 복숭아, 자작나무
휴직하기 직전, 서둘러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매년 초겨울쯤 받았는데 휴직하고 나면 귀찮다고 거를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나서야 우편으로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근육 부족, 체지방 과다, 위염, 경추 추간판 탈출 등등.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을 한 번 더 확인했고, 예상했던 결과들을 확인하고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겐 '뻔한 결과지'를 한 달 넘게 방치하고 다시 열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문득 꼼꼼하게 훑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직감은 이상하게 정확할 때가 있다. 오랜만에 받은 알레르기 검사 결과가 낯설었다. 원래 내가 갖고 있던 알레르기 유발 항원은 꽃가루, 집먼지 진드기, 키위였는데 이 세 가지에 알레르기 반응이 O으로 나온 것이다. 이상했다. 난 여전히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새롭게 등장한 고양이털과 복숭아, 자작나무와 오리나무. 나무는 평소 가까이하기 쉽지 않은데 복숭아와 고양이털이라니? 갑자기 생뚱맞았다.
알레르기란, 외부 물질에 대해 자기 신체 방어기전, 즉 면역이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변형된 반응으로 인해 두드러기, 비염, 천식 등의 이상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말함.
복숭아 철이 됐다. 난 복숭아를 좋아한다. 딱딱한 복숭아도 좋고, 물렁한 복숭아도 좋다. 신 과일을 싫어하는 편이라 요즘 남편이 자두에 빠져 지내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신 것을 잘 먹어야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데 나는 단 것만 찾고 있다. 큰일이다.
남편에게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 이것만 있는 게 아니다. 과일 껍질 (종류 불문)과 견과류에도 알레르기가 있다. 그런 남편을 보고 놀려댔는데, 이제 내 이야기가 됐다. 출산 후에 좋아하던 무화과와 키위를 먹지 못하게 되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거기에 복숭아까지 보태졌다. 내 몸이 어떻게 된 걸까? 알레르기까지 닮아가나? 부창부수인가?
나중에 주택에서 살게 되면 고양이도 키우고, 강아지도 키우고 싶어!
요즘 아이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었다. 예전엔 반려동물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이를 둘 낳았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반려동물과 식구가 되고픈 마음이 커져갔다. 그새 아이들이 좀 커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건지, 지금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머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강아지, 나는 고양이에 더 마음이 끌렸는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일까. 고양이를 키우면 나의 알레르기 반응은 심해질 것이다. 매년 4월과 9월, 환절기에 콧물과 재채기를 달고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왜 없던 알레르기가 생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전보다 면역력이 떨어진 건 분명해 보인다. 종합검진결과지를 다시 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까.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이건 제대로 알고 대비해야 나를 지킬 수 있다.
좋아하는 복숭아를 실컷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으려면 면역력부터 키워야겠다. 걱정은 조금만 하고 (아예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보다 더 푹 자고, 건강하게 먹고, 운동해야 한다. 꽃가루와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가 사라진 것처럼 복숭아,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주택으로 이사해 고양이도 키우고, 복숭아도 맘 편히 먹는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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