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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Jul 24. 2023

흰머리를 뽑으려다 울어 버렸다

나이 드는 것은 누구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나이 드느냐,
그것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
 
-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벨기에 출신 패션 디자이너)


머리를 감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머리카락 군데군데가 반짝거렸다. 새치가 더 늘었나 보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반짝거리는 건 더 오래 들여다봐서는 아닐지 희망을 가진다.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자든 아니든, 유명인이든 평범한 소시민이든 똑같이 노화의 시간을 겪는다. 그런데 어떻게 나이 드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말은 각자 다르게 들릴 것이다. 나는 어떻게 나이 들고 있을까.

출처 : pixabay.com


평소처럼 족집게를 찾아냈다. 거울 속 늙어가는 나를 노려본다. 조금도 망설임 없이 뽑기 시작한다. 마치 늙어감과 싸우기라도 하듯이.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뽑는데도 한참 걸렸다. 어깨도 아프고 목도 결리기 시작했다. 흰머리를 뽑고 나면 쾌감이 느껴진다. 내가 이겼다는 승리감에 취한다. 하지만 거울 속 내 이마에는 잔뜩 주름이 잡혀버렸다. 얼마나 인상을 쓰고 새치 뽑기에 몰입했는지 눈가도 퀭해진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우아함이 깃든 주름살은 사랑스럽다.
행복하게 나이 드는 일은
새벽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닮았다.
(빅토르 위고)


새치 뽑느라 생긴 주름살에 우아함이란 없다. 당연히 사랑스럽지도 않다. 행복하게 나이 든다는 것은 저항하고 싸우는 것과 거리가 멀다. 흰머리를 다 뽑고 나면 금방 다시 자란다. 그런데도 난 족집게를 놓지 않는다. 어리석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순간, 내가 바보 같아졌다. 이젠 정말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싶어 눈물이 났다. 아침부터 눈물이라니. 일하지 않고 쉬다 보니 쉽게 감정적인 인간이 되는 게 아닌가.


어느 연령층이든,
특히 나이 든 사람들에게 삶의 즐거움이란
캐면 덩어리째 나오는 황금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알 한 알 모아야 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착실하게 괭이질을 하는 자는
반드시 풍요로운 광맥을 찾아낼 것이다.
- <50 이후, 인생을 결정하는 열 가지 힘> 중에서



한 알씩 모으는 삶의 즐거움을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즐거운 일이란 거창하고 커다란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가진 성실함과 착실함을 왜 새치 머리 앞에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미용실에 커트하러 갈 때마다 염색 좀 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정도로 흰머리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래도 조금 더 버텨볼까 한다. 안 그래도 뻣뻣한 곱슬머리가 염색하고 나면 더 거칠어질 것 같기도 하지만, 조금 더 은색으로 반짝거릴 때까지 지켜보련다. 장마철 무덥고 습한 날씨에 마음까지 싱숭생숭해져 울어버린 아침에 작은 꿈을 꾼다.


곧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훨씬 더 많아지면 은발의 중년이 되어보고도 싶어 진다. 아예 은색으로 염색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전에 족집개는 치우겠다. 승모근에 힘주며 흰머리와 싸우지도 않겠다. 오늘부터 한 알씩, 나만의 즐거움을 모아나가겠다.


그래서 결국, 우아함이 깃든 주름살과 사랑스러운 백발의 중년이 되어볼 테다. 어떻게 나이 드느냐는 내가 선택할 문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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