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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별 Nov 05. 2021

언니.. 있잖아요.

나는 언니가 참 좋아요.

편안한데 가볍지 않고 심각한 얘기로도 나를 항상 웃게 해요.

성격유형검사가 유행할 때 언니랑 나랑 모든 테스트에 비슷하게 나온다며 재밌어했잖아요. 그래서인지 언니랑 얘기할 때면 여전히 수다스럽지만 주절주절 얘기하던 습관이 줄어요. 나를 이해시키려는 쓸데없는 노력 없이 '그치? 맞아~' 등의 추임새만 넣어가며 깔깔거리게 돼요.


우리 생각보다 진지한 얘기도 많이 했어요. 때마다의 이슈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빈곤층이나 동물,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중 끔찍한 사실들을 마주하면서도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비건이 될 수 없는 비건이라며 웃지 못할 이야기에도 깔깔거렸죠. 같은 이야기도 언니가 하면 유난히 더 재밌어요. 타고난 이야기꾼.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부분이에요.


그날은 힘든 날이었어요. 언니를 픽업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갑자기 터진 울음에 나도 당황스러웠는데 언니는 그럴 때 삼키면 다시 꺼내기 힘들다며 손수건을 주었죠. 깨끗이 빨아서 꼭 돌려달라는 말로 또 나를 웃겼고요. 나는 솔직하지 못해요. 감추고 싶은 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언니한테는 다 얘기하고 말았어요. 울다 웃다 코도 풀다. 그럴 내용이 아닌데 어느샌가 또 깔깔거리며 내 이야기를 하던 날 언니에게 반하고 말았어요. 과하게 위로하지 않아서 고마워요. 시시콜콜 묻지 않고 길어진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줘서 고마워요. 누구나 그런 아픔쯤 하나씩 다 있다며 더 심한 막장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요. 나의 외로움도 나의 우울함도 어쩔 수 없는 거였다며 예술가로 살았어야 한다고 해서 또 웃었죠. 그리고 언니도 가끔 외롭다며 외로움이 이 시대의 산물 같다는 말에 뜬금없이 위로가 됐어요


맞아요. 외로움은 나에게 큰 숙제예요. 매일이 바쁘고 미처 연락 못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이 커져가요. 그러다 나의 외로움이 소속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걸 깨달은 건 최근이에요. 왜 그토록 워킹맘이 부러웠는지 몰랐어요. 모임이 많은 사람들보다 직장이 있거나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이런 나를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남편은 나에 대해 나보다 좀 더 아는가 봐요. 언젠가 남편이 그랬거든요. 나는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주부로 만족이 안되고 타이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요. 나는 늘 반박했어요. 내가 애가 셋이라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한 거지 나는 태생이 게으르다. 나는 남편이 열심히 일해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면서요. 그런데 남편 말이 맞았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첫째를 낳고도 일을 시작했었다가 둘째가 생겼고 그러다 또 일을 시작하려는데 셋째가 생겼어요. 결국 일할 마음을 접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늘 일할 준비를 하고 있던 것 같아요. 타고난 본능처럼요. 그때 하려던 일들이 전문적인 일도 엄청 대단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마음 한켠에선 일을 안 해도 돼서 좋다 생각도 했었는데 말이죠. 아마도 남편 말대로 타이틀이 필요한가 봐요.


남편은 나를 신기해했어요. 아이들 케어만으로도 바쁘면서 이런저런 모임과 계획들로 쉼 없는 일주일을 사는 나를 보며 왜 저러나 싶대요. 체력은 저질이라 맨날 피곤해하고 벌려 놓은 것들은 수습도 제대로 못하면서 바쁜 일상을 반복하는 내가 이해가 안 된대요. '허전해서 그래. 빈틈이 많으면 잡생각이 밀려드니까 바쁘게 살아야 돼.'라는 말은 반찬도 시켜먹는 불량 주부로써 할 말이 아닌듯해서 삼켰어요.


벌려놓은 것들은 많은데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며 우리 왜 이렇게 사냐며 또 웃었는데요. 요즘 그 말을 자주 떠올리고 있어요. 이제는 제대로 하는 것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뭐가됐든 제대로 하는 게 생기면 그게 나에게 소속감을 줄 것 같아요. 그래서 재주도 재능도 없고 분주한 일상 중 시간을 내기는 더 어렵지만 힘을 내보려고요. 


고마워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아줘서. 나도 알 수 없던 마음을 언니의 언어로 표현해줘서 고마워요.

우리 늘 하는 말처럼 적당히 보며 살아요. 오래오래 질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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