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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별 Jan 07. 2021

초록 어머니의 시선

초록 어머니라 쓰고 녹색 어머니라 읽는다.


7시에 맞춰 둔 알람이 울렸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8시 10분. 남은 시간은 30분.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첫째 아이 수업시간 되면 들으라며 TV를 켜주고, 쉰내 날까 두려운 몸뚱이를 서둘러 씻고 달려갔다. 하지만 결국 2분 지각.
뒤늦게 올해 들어 가장 춥다며 잘 채비하라던 남편의 문자가 떠올랐지만 덜 마른 머리는 이미 얼어있었다.
아쉬운 대로 패딩에 달려있는 모자를 둘러쓰고 소매를 내려 손을 감싸 깃발의 모양새도 잡아본다.

횡단보도 신호에 맞춰 깃발을 앞으로 뻗었다 오른쪽으로 옮겼다 하는 움직임의 반복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벌써 지루해지려 한다. 40분을 어찌 서있나 싶어질즈음 신호를 사이에 두고 선 엄마들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내 위치와 깃발 길이도 체크해보다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본다.

신호는 4번의 차량신호와 1번의 사방 보행자 신호까지 한 회전을 도는 데 4분 조금 넘게 걸렸는데 보행자 신호 마지막 10초 사이에 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6초에 뛰는 아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3초를 남겨두고 전력 질주했던 청년이 횡단보도 건너기에 성공하고도 민망해하는 모습에는 웃음이 나왔다.

전날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천명을 넘으며 휴교가 결정되서인지 막상 휴교는 화요일부터라는데 월요일인 오늘도 학교로 가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역시나 무료함에 드문드문 지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집에서는 시시때때로 투닥거리며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을 남매가 눈에 들어왔다. 앞을 보며 터덜터덜 걷는 동생을 이리저리 살피던 누나는 동생의 패딩을 다시 매만져주고 지퍼를 잠가주었다. 그러고도 눈도 마주치지 않은 동생에게 말을 건넨다. 무슨 말이었을까. 그 순간만큼은 아이의 보호자로 동생을 챙기는 어린 누나의 기특한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조금은 튀는 파란색 츄리닝에 까만 패딩을 입은 한 남자도 눈에 들어왔다. 전동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달고 횡단보도를 여유롭게 건너고 있었는데 트레일러 안에 아이가 앉아 있고 자세히 보니 그 남자 앞에도  아이가 앉아 있었다. 두 아이를 태우고도 꽤나 익숙해 보이는 것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몇몇 가게를 지나 학교 정문에 자전거가 멈춰 서자 남자는 자전거에 함께 앉아있던 아이를 내렸다. 트레일러에서는 예상보다 키가 큰 아이가 나왔는데 혼자만 가방을 메고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보니 그 아이만 등교하는 것 같았다. 큰 아이를 등교시킨 뒤 남자는 자전거에 앉았던 아이를 트레일러에 태웠다. 집을 가는가 싶 남자와 자전거가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잠시 편의점에 들어갔다 나온 남자는 트레일러 속 아이에게 무언가를 건네며 들리지 않는 대화를 나눈다. 무엇이었든지 잘 가지고 있으라는 얘기이거나 집에 가서 같이 먹자 등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마지막까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돌아가던 그 사람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남자는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 중이었을까. 아니면 연말까지 다 못쓴 연차라도 쓰는 것일까. 사업을 하는 사람일까. 알고보니 삼촌이었을까. 궁금함에 대한 답이야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의 가사분담이 자연스러울 것 같고, 평소에도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과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일 것도 같다. 이런저런 예상 가능한 모습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따뜻한 아빠를 예상케 하는 모습에 흐뭇해졌다.

한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나는 행인들을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따스했다. 경치 좋은 곳에 올라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가슴이 뻥 뚫리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사람들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더니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구경에 조금 귀찮기도 했던 초록 어머니가 꽤 괜찮은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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